[고전명구 193] 아름다운 뒷모습을 위하여
豈可都喪廉恥 知進而不知退乎
어찌 염치를 모두 잊어버리고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 김육 (金堉, 1580~1658)
<형조판서를 사직하는 상소[辭刑曹判書疏]>《잠곡유고(潛谷遺稿)》
이 글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였던 김육이 형조판서를 사직하며 올린 상소에 보이는 내용이다. 예전 시대에는 겸양이 미덕이라 직임이 맡겨지면 으레 사양하는 면도 있었지만, 명분과 도리를 소중히 여겼기에 조금이라도 혐의쩍은 일이 생기면 바로 사직을 청하고 물러났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과오가 아니라 조상이 남들의 구설에 오른다는 이유만으로도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내기도 하였다. 김육도 형조판서에 임용되는 과정에서 다소 혐의쩍은 일이 있어 그 직임을 사직하면서, 맡지 말아야 하는 자리를 맡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 말한 것이다.
염치란 부끄러움인데, 부끄러움이 없다면 못할 짓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의 하나로 염치를 꼽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조건 환경과 시선에 얽매어 자신의 소신을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의 기본 질서와 도리를 파괴하면서 나 자신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지난 과오를 돌이켜 볼 때에, 아무리 욕심이 있고 또 아무리 나와 나의 주변에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차마 하지 못할 일들이 있는데, 기어코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염치가 없다는 것이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부족한 것임을 그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물러날 줄을 모르고 염치없이 나아가기만 하는 자의 다음 모습은 어떠할까? 조선전기의 문인인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모른다면 결국은 엎어지고 말 것이다.[知進不知退 竟至於顚跌]”라고 말하였다.
현대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낙화〉)” 아름다움은 이제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염치를 모르는 추한 모습만은 보이지 않았으면……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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