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선입견에 대하여

도솔산인 2012. 5. 10. 10:29

 

- 백 여든 네 번째 이야기 -

2012년 5월 10일 (목)

선입견에 대하여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던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잘못하는 것을 보고 나쁘게 여길 수가 있으며,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혹 뒤에 존경할 만한 일을 보고서 그를 존경하는 수도 있다.

 

素所賢之者。當其時有見其失而非之者。

소소현지자。당기시유견기실이비지자。

 

素所未賢者。或於後有見可敬而禮之者。

소소미현자。혹어후유견가경이례지자。

 

 

- 이규보 (李奎報)

<유자후가 《국어》를 비난한 것을 반박함[非柳子厚非國語論]>

《동문선(東文選)》

 

 

《국어(國語)》는 춘추 시대의 나라별 사서(史書)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저자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국어》의 일부 기록에 대해 유자후(柳子厚)가 좌구명을 비난하였고, 이규보는 이에 대해 비난할 바가 아닌데도 비난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유자후가 비난한 《국어》의 기록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진(晉)나라 영공(靈公)이 나쁜 짓을 하자 진(晉)의 대부(大夫) 조선자(趙宣子)가 심하게 간(諫)하였다. 영공이 역사(力士)인 서예(鉏麑)를 시켜 조선자를 죽이라고 했는데, 서예가 조선자의 집에 가서 보니, 아직 새벽인데도 조선자는 관복을 벗지 않은 채 앉아서 밤을 새고 조회에 나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서예는 그 충성에 감동되어 감히 죽이지 못하고 자기 몸을 나무에 부딪쳐 자살하였다.

 

유자후는 이 기록에 대해, “조선자가 임금에게 간언을 하고 국가를 보호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서예는 어찌하여 이러한 사실을 듣지 못하고 새벽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훌륭하다고 생각했는가. 그 큰 것은 알지 못하고 작은 것을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했으니, 이것은 선자가 큰 덕으로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공경하는 작은 태도로 화를 면하게 된 것이다. 좌씨는 문장을 만드는데 능란하여 그렇게 말을 만들어놓은 것이다.”라며 좌구명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즉, 서예가 평소 조선자의 훌륭함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마치 새벽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훌륭한 줄 안 것처럼 말을 꾸며냈다고 나무라는 것이지요.

 

유자후의 이런 비난에 대해 이규보는,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던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잘못하는 것을 보고 나쁘게 여길 수가 있으며,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혹 뒤에 존경할 만한 일을 보고서 그를 존경하는 수도 있다.”라는 말로 유자후를 비판합니다. 서예가 평소 조선자의 훌륭함을 모르고 있다가, 이날 새벽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그의 훌륭함을 깨닫고 새로이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으니 좌구명이 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규보 선생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진술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선입견 혹은 편견이라는 측면입니다. 사람의 선입견이나 편견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서예가 평소 조선자의 훌륭함을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이날 아침 조선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선으로만 보았다면 조선자는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니 그 훌륭함이 보였고, 고민 끝에 의로운 선택을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역사에 향기로운 이름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혹 주변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막연한 선입견을 갖지는 않았는지, 그 결과 그 사람의 훌륭한 점을 아예 외면하거나, 혹은 한두 가지 잘못된 행위를 보고 ‘넌 그런 사람이구나.’라고 단정 짓고 계속 그렇게 대함으로써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횡포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편견이라는 벽 속에 가두어 버린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