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齋 <崔慶昌>
古郡無城郭 山齋有樹林
蕭條人吏散 隔水搗寒砧
고봉산재(高峰山齋) 고봉군 산 재실에서
오래된 고을이라 성곽조차 없는데 산 서재엔 나무숲만 둘러 서 있네
쓸쓸하게 아전 사람 흩어진 뒤에 물 저편서 들려오는 다음잇 소리
이 시는 고봉군(高峰郡)에 있는 산 속 서재에서 읊은 시로, 인적이 드문 산 속에서 외롭고 적막한 분위기에 잠겨 있는 시적 주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 최경창[崔慶昌, 1539~1583]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태생. 본관 해주(海州). 자 가운(嘉運). 호 고죽(孤竹). 박순(朴淳)의 문인.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 ·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으로 불리었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파(三唐派)이라고도 일컬어졌다. 1568년(선조 1) 증광시문과(增廣試文科)에 급제,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1583년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었으나 상경 도중 죽었다. 시와 서화(書畵)에 뛰어났으며, 피리도 잘 불었다. 숙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문집에 《고죽유고(孤竹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