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조동석 조동석(1845~1896. 6.17) 경북 상주(尙州) 사람이다. 의병으로 경북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894년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였다. 조동석은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8.21
止山 李起璨선생 이기찬(1853.10.12~1908. 1.13) 경북 청송(靑松) 사람이다. 1896년 음(陰) 2월 10일 경북 김천(金泉)에서 허 위(許蔿)·조동석(趙東奭)·강무형(姜懋馨) 등과 함께 거의하여 금릉(金陵)을 점령하고, 포군(砲軍)을 포함한 수백 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무장시킨 후 대장(大將)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조동석을 군문도..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8.21
盛山 허겸선생 허겸(1851.10.23~1939.10.21) 허 겸은 의병대장 허 위(許蔿)의 형으로 경상북도 선산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늑결되자 반대상소를 올렸으며 적극 반대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을사오적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후 동지 4백여 명을 규합하여 경기도 연천(漣..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8.21
[스크랩] 오마이뉴스 허씨종친회상견례 마침내 할아버지 나라의 백성이 되다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후손 국적 취득 박도(parkdo45) 기자 ▲ 할아버지 나라에 귀화를 하고 활짝 웃는 왕산 후손들(왼쪽부터 허블라디슬라브, 그의 차남 허세르게이, 장남 허알렉산드, 자부 아이굴, 허게오르기 장남, 허게오르기, 왕산문중 대표 허벽 선생) ⓒ 박도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8.21
지산유고에 나오는 왕산 허위선생의 기록과 왕산의 가계도 * 지산유고에 나오는 왕산 허위선생에 관련된 기록과 왕산의 가계도 ▶丙申年(1896년) 二月 八日 與木川族人起夏 適往甘川 訪許旺山蔿慷慨士也 憤不顧身魯 與數三同志 有措備於金山等地 而方在啓行中 余不敢辭 與諸益偕往趙進士東奭 柳兄道燮 實左右之 이월 팔일 木川(목천)에 사는 族人(족인) 起..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8.21
[스크랩] 내가 葛嶺에 가야하는 까닭은... * 일 시 : 2006년 4월 9일 * 경유지 : 대전 - 영동 - 상주 - 의성 - 길안 - 청송 - 길안 - 의성 - 상주 - 화북 - 갈령 - 청계사 - 화북 - 보은 - 옥천 -대전[13시간(차량운행 7시간 포함)] * 인 원 : 4명(이원규, 이성규, 이영규, 이범규) 지산유고를 읽으며 온몸을 전율하였던 것은 충과 역의 혼돈이었다. 그리고 50년간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9
[스크랩] 을미의병운동 지산 유고에 나오는 갈령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七日 二十七日 踰葛嶺 抵高橋 問宗人秉禧 居喪中 大于壯岩李交河家 堤川召募將李華榮 執富人吳進士 與金都事 載前載後 余心不樂 先發至松面 松面近地 無一人 安業者細細 探得前到十輩 不知何許無名 而逢人必討逐戶 而索可駭 分付中營 捕捉不得 且聞 殺尙州首吏與申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9
[스크랩] 5대 조부 조비 고조부 백씨 緬禮 5代祖·高祖 墓所 緬禮 및 床石建立 1. 방향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羅湖洞에 모신 상의공(五代祖考 五代祖비) 후손들이 청흥문중 종회를 구성한지 어언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본래의 목적대로 임야를 매입한 후 이장하려고 하였으나 제반 여건이 마땅치 않아 宗賢 廷稷氏의 양해를 얻어 대전 유성구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7
靑興門中의 家族史 靑興門中의 家族史 ■ 일 시 : 2006. 06.06 ■ 장 소 : 함각산(대덕구 마산동), 백운봉(유성구 성북동) ■ 인 원 : 이동, 이남, 이영규, 이범, 당숙어른 부부 靑興門中의 家族史 1912년은 우리 가족에게는 비극의 해였다. 한일합방이 되어 일본 경찰의 압박이 심해지자 長子 휘康夏는 1912년 아버지인 지산의 유..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7
부질없는 일... 나는 지산할아버지의 묘를 종실 스님과 찾았다. 일제 50년 넘는 세월을 지나, 1979년 충북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에서... 그분의 유해는 없었다. 이미 아들인 강하 할아버지가 1912년 초강(금강) 변에서 그 분의 둘째 아들 강은 할아버지의 유해와 함께 화장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나는 그분의 아버지와..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