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지산유고

가보고 싶은 곳 紅心洞

도솔산인 2007. 2. 23. 09:12

* 삼도봉 아래 홍심동

 

▶丙申年(1896년) 三月 初五日
 初五日 入三道峰下紅心洞 卽李台容直山庄也 有積百苞租 自願付義 亦過手也


 삼월 초닷세 三道峰(삼도봉)아래 紅心洞(홍심동)으로 들어가 李容直(이용직) 公의 山莊(산장)에 나아갔다. 온갖 돌 콩과 쌀이 쌓여 있는 것을 자원하여 義陣에 주었는데 또한 지나칠 정도의 큰손이었다.

 

 수소문해서 홍심동을 찾았다.

 

 

  홍심동(紅心洞)

 

 대야리 남쪽 골짜기에 몇집 있었던 마을이다. 구한말 이곳에 살던 이용강 (李龍岡. 경상도관찰사를 파직당하고 이곳에 은거)이 주택을 짓고 살면서 부녀자를 농락하는 등 횡포를 부렸는데, 항일독립군 김산장의군(金山杖義軍)에게는 군량미 80석을 순순히 내놓았다 한다.

 

김천의문화 -지명유래 및 설화에서-

 

 

이용직(李容直)에 대하여 

이용직(李容直)

 1824(순조 24)∼?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경(受卿, 授卿). 병구(秉九)의 아들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용강현령·홍문관교리를 거쳤고 실록청기주관을 겸하였다. 이후 사간원헌납을 거쳐 사헌부집의·장악원정·동부승지·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1864년(고종 1) 성균관대사성, 1865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여주목사로서 호남소모사(湖南召募使)가 되어 장정을 모집하였다. 이후 한성부 좌윤·우윤, 병조·이조·예조의 참판을 역임하였고, 1882년 대사헌이 되었다.

 공조판서·의정부좌참찬을 지냈고,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경연관(經筵官)을 겸하였으며, 1893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관제개혁 후 1902년 궁내부특진관을 역임하였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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