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독립운동

잊혀진 독립운동가

도솔산인 2006. 9. 28. 16:10
 

잊혀진 독립운동가 ‘내몽고 항일운동의 대부(代父)’ 이자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중국 내몽고 지역에서의 한인 항일운동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단국대 한시준 교수(한국사)는 1930~40년대 내몽고에서 의사(醫師)로 일하며 광복군으로 활동한 이자해(1894~1962?)의 자서전 ‘자해자전’(慈海自傳)을 입수, 경향신문에 공개했다.

 

1949년 9월9일 내몽고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광복군 대원들과 함께 찍은 이자해(원 안). /한시준교수 제공

자서전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자해의 생애뿐 아니라 30~40년대 광복군 활동 등 독립운동연구의 빈 공간이던 내몽고 지역에서의 항일운동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사료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중국어로 쓰여진 자서전은 국판 크기의 383쪽으로,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한글로 번역 중이다.

자서전은 이자해가 3·1운동 직후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는 이야기로 시작해 문화혁명 직전인 1960년까지의 ‘만리역정’이 시간 순서로 쓰여져 있다. .

자서전에 따르면 이자해는 전쟁터에서 적군 부상병까지 치료해준 휴머니스트로서의 ‘닥터 노먼 베쑨’이자 한평생 일제에 맞서 싸운 지조있는 혁명투사였다. 국민당과 친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훈장 추서를 받지 못했고 남북한 역사에서도 잊혀진 비운의 독립운동가가 새로이 발굴된 셈이다.

그가 내몽고로 쫓긴 것은 일본 비행기의 시도때도없는 추격 탓이다. 37년 일본이 노구교 사변을 일으키며 베이징으로 들어오자 그는 국민당군을 따라 내몽고 바오터우(包頭) 지역으로 이동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기도 하고 하루 60리씩 십수일간 강행군을 펼쳤다. 쫓기는 와중에서도 군용물자를 실은 일본 차량 20대에 탑승한 일본군 60명과 교전, 기관총 4대로 30여명의 일본군을 사상시키는 등의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가 내몽고에서 벌인 활동은 주로 광복군(1940년 9월 창설) 초모(招募:병력 모집) 활동. 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 받아오던 이자해는 41년 임시정부 광복군사령부 국무처장으로 임명됐고, 일제가 만주 침공을 위해 ‘개척단’이란 이름으로 집단 이주시킨 조선인들을 광복군 쪽으로 물꼬를 텄다. 또 병력 모집 활동을 나온 광복군 대원들에게 몰래 숙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44년 8월에는 임시정부 김구 주석으로부터 공작지령을 2전달받고 내몽고 지역의 ‘광복군 초모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자해가 3·1운동 직후 “조선을 떠난 유일한 동기”는 “항일구국”을 위해서였다. 평북 자성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의대를 마치고 중강진 공립병원에서 근무하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 랴오닝성에 있는 대한독립단에 합류했다. 그가 활동한 대한독립단은 팔도강 특파대를 보내 압록강을 다시 건너 ‘일본경찰소’ 공습 및 후창군수 살해 등 전과를 세워 상하이임정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23년 베이징으로 간 그는 국민당 총사령관을 지낸 펑위샹(馮玉祥) 부대의 외과병원 의사를 하면서 이후 줄곧 임시정부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시준 교수는 “상하이에 신규식이 있었다면, 내몽고에는 이자해가 있어서 항일운동가들이 그곳으로 몰렸다”면서 이자해가 ‘내몽고 항일운동의 대부(代父)’로 자리매김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자해는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중국인 아내 때문에 내몽고에 남았다. 자서전에는 “김구선생이 ‘나와 함께 조국으로 돌아가 조국건설을 위해 노력하자’는 편지를 보내왔으나 병이 심하고 가정을 떠나는 것이 가슴아파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면서 그것은 “나의 정치적 실수”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문화혁명을 거치며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군의관 전력이 있는 그의 항일운동 업적을 인정해주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어떤 서훈도 받지 못했다. 내몽고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에 아들 우송씨(73)가 생존해 있다.

한인들의 내몽고 이주는 1900년 경 시작되어 3·1운동 이후 본격화됐다. 40년대에는 일본의 ‘개척단’이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하며 정착촌을 형성했다. 이들의 후손 2만2천여명 조선족이 지금도 바오터우 등지에 살고 있다. 내몽고 지역 항일운동에 대한 연구는 조선족학자 염호씨가 ‘내몽고조선족’이 유일하며 국내의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다.

손제민기자


출처 : 민족반역자처단협회  |  글쓴이 : ★혁명가☆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