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칠성 박성섭님 만나러 영랑대 가는 길

도솔산인 2025. 6. 8. 23:03

칠성 박성섭님 만나러 영랑대 가는 길

 

 

▣ 일 시 : 2025년 06월 06일(금)~8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쑥밭재-청이당-영랑대-구롱길-일강-상내봉-벽송사능선-어름터-광점동

▣ 인 원 : 3명 박지합류 2명

▣ 날 씨 : 맑음(영상 15도) 

 

 

  김종직의 유두류록길을 복원하는데 도움을 준 산친들은 많다. 부산 토요산속 칠성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칠성님과 함께 2020330일 아홉모랭이길을 완성하였다. 칠성님의 1주기(周忌)를 맞이하여 혼백을 모신 영랑대에서 조촐한 추모제를 지냈다

 

 

구글 제미나이(Google Gemini) 지리산 인문산행 칠성 박성섭

 

  지리산 인문산행 칠성 박성섭은 지리산의 단순한 산행을 넘어, 산에 깃든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깊이 탐구하고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친 고(故) 박성섭 님을 지칭합니다. 그의 호(號)인 '칠성'은 그를 상징하는 이름이며, 그가 지리산과 얼마나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지리산꾼'으로서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다음과 같은 인문산행 활동을 펼쳤습니다.

  • 지리산 역사문화 조사 및 기록: 박성섭 님은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지리산 곳곳에 숨겨진 역사적 흔적들, 예를 들어 옛 절터, 마애불, 각석(바위에 새겨진 글씨), 그리고 사라진 마을 터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리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 고증 및 이야기 발굴: 그는 단순히 유적지를 답사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 인물들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어 고증하고 재조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리산이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닌, 수많은 삶과 역사가 응축된 공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 지리산 인문학 대중화: 그의 영상과 활동은 지리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많은 이들이 지리산을 '인문학의 보고'로 인식하고 깊이 있게 탐방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지리산 관련 강연이나 토론회에도 참여하여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박성섭 님은 2024년 6월 별세하기 전까지 지리산 인문산행의 선구자이자 헌신적인 기록가로 활동하며 지리산 애호가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업은 지리산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지리산 인문산행 칠성 박성섭'은 지리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깊이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산행 활동을 펼친 박성섭 님을 지칭합니다. 그의 호(號)인 '칠성(七星)'은 그가 지리산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박성섭 님은 단순한 등산객이 아니라, 지리산의 역사, 문화, 설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인문산행'은 다음을 포함합니다:

  • 역사적 유적지 탐사 및 고증: 지리산 곳곳에 숨겨진 옛 절터, 마애불, 비석, 그리고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내고 그 역사적 의미를 고증하는 데 열정을 쏟았습니다.
  • 지리산 관련 기록물 연구: 오래된 유람록이나 문헌, 그리고 지리산 관련 구전 설화 등을 연구하여 지리산의 인문지리적 지식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 유튜브 채널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운영: 그가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한 지리산의 다양한 인문학적 요소들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대중과 공유했습니다. 이 채널은 지리산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강연 및 토론 활동: 지리산 관련 인문학 강연이나 토론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지리산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목압서사'와 같은 곳에서 열리는 인문학 특강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성섭 님은 지리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얻은 깊은 통찰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리산을 단순한 자연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의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알리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2024년 6월에 별세했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발자취는 지리산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어름터 청수정
방장문
방장문
청이당터 석축
청이당터
점필재가 쉬어간 계석
나도옥잠화
선암
문바위골 주막터
네모랭이 이정표 바위

 

 

  내가 지팡이로 계곡의 돌을 두드리면서 유극기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아, 어떻게 하면 그대와 함께 은둔(隱遁)하기를 기약하고 이곳에 와서 노닐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하고는, 그에게 바위의 한가운데에 이끼를 긁어내고 이름을 쓰도록 하였다. [1472년 김종직의「유두류록」] 

 

 

 강계형(姜桂馨, 1875-1936)양화대산수록(陽和臺山水錄)에 향로봉(香爐峰)에 대한 기록이 있다. 동시대에 의탄 의중마을에 살았던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비결명문논집에는 상로봉(霜老峰)으로 기록하고 있다. 향로봉(香爐峰)을 경상도 방언으로 상내봉이라고 한 것을 음차(音借)하여 한자로 상로봉(霜老峰)으로 표기한 듯싶다. 상내봉은 경상도 사투리에서 향로봉의 구개음화 현상이다. 와불 형상을 한 불두(佛頭)에서 발끝까지 전체가 와불산이다. 와불산의 주봉인 1213.9m, 향로 모양의 오뚜기 바위가 향로봉(상내봉), 아미타불의 불두 형상인 1164.9m 봉이 미타봉이다. 상내봉(향로봉)이 제 이름을 찾는 데 20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