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동부 영랑대 눈 내리는 밤에
▣ 일 시 : 2025년 01월 26일(일)~27일(월)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
▣ 인 원 : 3명
▣ 날 씨 : 흐림(영하8도)
설 명절을 앞두고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듣고 지리산에 들었다. 마음속으로 고대하던 영랑대 심설 산행이다. 지난 가을 두 차례 영랑대 연습 산행(?)을 하였으나, 이제 동계에는 자신이 없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겨울이 되면 늘 마음은 영랑대로 향한다. 청이당터에서 하봉 옛길을 지나 동부 능선에 들어서니, 바람에 몰아친 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지난 20일 일친(一親)들이 러셀을 해 놓아, 오후 3시가 넘어 영랑대에 도착했다... 영랑대에서 눈 내리는 밤을 맞았다. 밤새 사각사각 젤트에 눈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無住庵(무주암) - 無己
此境本無住 : 본래 이곳은 머물 곳이 아닌데,
何人起此堂 : 어떤 사람이 이 집을 지었는가?
唯如無己者 : 오로지 무기와 같은 사람만이,
去住兩無妨 : 떠나고 머무는데 거리낌이 없어라.
무기(無己)는 생몰년 미상의 고려 시대의 승려로 자호는 대혼자(大昏子)이다. 지리산에 숨어 살면서 수도에 전념하였으며, 장삼 한 벌을 평생토록 입고 살았다고 한다. 특이한 행적 때문에 기승(奇僧)으로 평가받았으며, 최자의 『보한집(補閑集)』 권하에는 대혼자 무기(無己)의 「무주암시(無住庵詩)」가 수록되어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卷三十一 慶尙道 불우조
無住菴。在智異山。○《補閑集》云:“僧無己自號大昏子。隱於此山,一衲三十年。每冬夏不出,卷肚皮束于帶索。春秋鼓肚遊山,日食三四斗。一坐必浹旬,起行則朗吟作偈。山中七十餘菴,每食一菴,輒留一偈。無住菴偈云:‘此境本無住,何人起此堂?唯餘無己者,去住本無妨。’ 語若疎易,而寄意高深,殆寒、拾之流歟?”
무주암(無住菴) 지리산에 있다. ○ 『보한집(補閑集) 』 에, “중 무기(無己)가 스스로 대혼자(大昏子)라 호하고, 이 산에 숨었다. 장삼 하나로 30년 동안을 지냈고, 매년 겨울과 여름이면 나오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새끼 띠로 감아 묶고서, 봄가을이면 배를 두드리며 산을 유람하는데, 하루에 3ㆍ4말 밥을 먹었다. 한 곳에 앉으면 반드시 열흘이 넘었고, 일어나 걸으면서 게(偈)를 지어 크게 읊었다. 산중에 70여 개 암자가 있는데, 한 암자에서 한 끼씩 먹으면서 게(偈) 한 수씩 남겼다. 무주암 게에, ‘이 지경에 본래 주거하는 이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이 집을 지었는가. 오직 무기(無己)란 자만이 남아서 가거나 머물거나 처음부터 거리낌 없다.’ 하였으니, 말이 엉성하고 쉬운 듯하나 숨긴 뜻이 깊다. 혹시 한습(寒拾)의 무리인가.” 하였다.
注 한습(寒拾) : 당(唐) 나라 중엽의 유명한 중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약칭한 것이다. 그들은 기행(奇行)으로 유명하고, 시승(詩僧)으로 유명하였다. (고전번역원 DB)
출처 : 고전번역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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