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과 전대(前臺)
▣ 일 시 : 2022년 10월 29일(토)
▣ 코 스 : 무량굴-정자터-샘터-석굴암자터-암자터-회암당부도터-묘적암전대-서동고암-상무주암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1686년 윤 4월 11일 우담 정시한의 동선을 좇아 무량굴에서 암자터와 석굴→묘적암터→서동고암터→상무주암까지 진행하였다. 1686년 9월 2일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아침 식사 후에 아들 도항(道恒)이와 혜철(惠哲) 수좌와 함께 묘적암으로 가는 도중에 계학(戒學) 스님을 만나 서암(西庵) 터에 들른다. 여기에서 서암은 서동고암터를 가리키는 듯하고, 묘적암터는 회암당 승탑터로 추정한다.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서암(西庵) 터를 다녀온 후 묘적암으로 돌아와 묘적암 전대에 올라갔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묘적암 전대는 회암당 부도터 앞 20여m를 진행하면 전망대가 있다.
▶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과 전대
1. 윤 4월 11일 새벽 천둥과 벼락 비가 그침(함양 상무주암)
무주암-무량굴-절터와 굴(寺基及窟)-묘적암
○ 閏 十一日朝齋後 與三應首坐 往無量窟 又上妙寂菴 歷見寺基及窟 至妙寂思哲坐語 少時還無住菴 約行十餘里 石路極險 登陟頗勞
○ 윤 4월 11일, 아침 재식(齋食, 佛家에서의 食事)을 한 뒤에 삼응(三應) 수좌와 함께 무량굴(無量窟)에 갔다가 다시 묘적암(妙寂菴)으로 올라왔다. 절터와 굴(寺基及窟)을 두루 보고 묘적암(妙寂菴)에 이르러 사철(思哲) 수좌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잠시 후에 무주암(無住菴)으로 돌아왔다. 약 10여 리를 걸었다. 돌길이 매우 험하여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2. 9월 2일 맑음 아침에 얼음이 얼었다.(무주암)
무주암-묘적암-서암터-묘적암-앞에 있는 臺(前臺)-무주암
○ 九月初二日晴朝氷
惠哲首座備饋朝食 朝食後 與恒子及惠哲首座 往見妙寂菴 過僧戒學迎見 仍與往見西菴基 君子僧自信來現 又還妙寂菴 登前臺入坐房中
○ 9월 초이틀 맑음 아침에 얼음이 얼었다. 혜철(惠哲) 수좌가 아침을 준비했다. 식사 뒤에 아들 도항(道恒)이와 혜철(惠哲) 수좌와 함께 묘적암(妙寂菴)에 가보았다. 도중에 계학(戒學) 스님을 만나 함께 서암(西庵)터를 가보았다. 군자사에서 자신(自信) 스님도 와서 만났다. 다시 묘적암(妙寂菴)으로 돌아와 앞에 있는 대(前臺)에 올라갔다가 방에 들어갔다.
▶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서동고암
○ 윤4월 9일 흐린 뒤에 맑음(함양 상무주암)
아침식사 뒤 삼응(三應) 스님과 함께 묘적암(妙寂菴)에 가서 잠시 앉아 있다가 사철·삼응 스님과 함께 서동고암(西洞古菴)에 갔다. 암자는 석대 위에 자리 잡았는데 좌우의 입석이 기괴하다. 동쪽 가에는 석천(石泉)도 있다. 산세가 휘감아 돌아 바람도 많지 않으니 가히 몇 칸짜리 집을 지을 만하다. 더군다나 맑은 기운마저 서려 있으니 정말로 이 곳은 도인이 수련할 만한 곳이다. 신순 수좌를 무주암으로 오라 해서 집을 짓고 샘을 파면 어떠한지 헤아려보게 했다. 샘을 두 곳 파는 것은 샘물이 부족한 게 흠이기 때문이다.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경숙이가 군자사에서 잣을 구해왔다. 군자사 스님이 미나리 두 단을 보내왔다. 저녁식사 뒤 다시 지자대(止慈臺)의 동대(東臺)에 갔다 온 다음 사철 수좌와 함께 잤다.
○ 윤4월 10일 흐린 뒤 맑음, 바람이 불었다.(함양 상무주암)
아침식사 뒤에 신순 스님과 함께 지자대(止慈臺)에 갔고, 또 사철 스님을 데리고 서대(西臺)에 갔다. 이 터에 우물을 파면 좋을 듯하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무주암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뒤 설청 스님과 지자대(止慈臺)에 다녀온 다음 사철 스님과 함께 잤다.
소재지 : 함양군 마천삼정로 544-342(마천면 삼정리 154-1번지) 상무주암
행적자 : 정문수(鄭文殊)외 3인 연대 : 일제강점기 석각시기 : 1924년
[개요]
1924년 무주암(無住庵) 축대 공사에 시주한 정문수(鄭文殊), 최정심(崔淨心), 박정연(朴淨蓮), 화주 이남파(化主 李南坡)의 인명이 있다.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약간의 수행승들과 함께 창건함. 지눌 스님이 800여 년 전 길 없는 산길을 걷고 또 걸어 토굴을 만들어 수도 정진 한 곳이 이곳 상무주다. '더 이상 머무를 곳이 없다.'라는 상무주암... 지눌 스님의 제자 혜심(慧諶)이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쓰고 혜심의 제자 각운이 스승이 쓴 책에 주석을 붙여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라는 책을 썼는데, 다 집필하고 나니 기이하게도 붓통 속에서 사리가 떨어져 봉안한 탑이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라는 것이다.
☞ 각운(覺雲) : 생몰년 미상 임제종 보우의 법통을 이어 남원 만행산 승련사에 있으면서, 〈전등록 傳燈錄〉(과거 7불로부터 5家 52世에 이르기까지 전등한 법계의 차례를 기록한 책)을 깊이 연구했다. 본관은 남원. 속성은 유(柳)씨이며, 호는 구곡(龜谷)이다. 아버지는 의관이다. 학덕이 높고 필법이 뛰어나 공민왕이 그의 도행을 존경하여 〈달마절로도강도 達磨折蘆渡江圖〉·〈보현육아백상도 普賢六牙白象圖〉 등 직접 그린 그림과 '구곡각운'이라는 친필을 주었으며,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숭신진승 근수지도 도대선사(大曹溪宗師 禪敎都摠攝 崇信眞乘 勤修至道 都大禪師)라는 법호를 내렸다.<출처 :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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