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도탄 변사정의 유허지를 찾아서(220315)

도솔산인 2022. 3. 17. 18:59

 

도탄 변사정의 유허지를 찾아서(220315)

 

 

▣ 일 시 : 2022년 03월 15일(화)-17(목)

▣ 코 스 : 도탄정사-흑담(수월대)-황계폭포-송대-세진대-내마마을-마천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 1580년 변사정의 「유두류록」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타고난 자질이 어리석으며 성품이 거칠고 배움이 보잘것없어 세상에서 믿음을 받지 못해 그저 농사짓고 독서하는 것을 나의 일로 삼았다가정(嘉靖) 을묘년(乙卯年, 1555, 명종 10) 봄에 두류산 도탄(桃灘)에 초가집을 짓고 아침엔 집을 나서 구름 낀 높은 곳에 있는 밭을 갈고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다피곤하여 할 일이 없는 날이면 사슴과 더불어 사립문을 닫아걸고 한가하게 초가에서 누워 쉬었다이웃에 사는 노인이 때때로 채소와 술을 가지고 나의 초가에 와서 대접해 주었다생활이 적막하여 홀로 즐기며 돌아갈 줄 몰랐으니 학업은 더 서툴러져서 진척되기를 바랄 것도 없었다이처럼 이곳에서 홀로 즐기며 생활한 지가 수십 년은 되었다.

 

☞ 변사정 (邊士貞, 1529~1596) :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장연(長淵). 일재(一齋) 이항(李恒)과 옥계 盧禛(1518~1578)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움. 본관은 장연(長淵), 자는 중간(仲幹), 호는 도탄(桃灘). 참판(參判)을 지낸 수정(水亭) 변처후( 邊處厚)의 5세손이며, 생원(生員) 변호(邊灝)의 아들로 1529년(중종 24)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남원의 운봉(雲峰)의 뱀사골 도탄에 桃灘精舍(도탄정사)를 짓고 은거하여 도탄(桃灘)선생이라 칭하였다.

 

桃灘邊先生遺䑓(도탄변사정선생유대)
도탄정사(?)

 

▶ 유몽인의 於于集卷之二 / 詩○頭流錄

 

黑潭 二首[흑담 2수]

 

千峯齊聳鬱嵯峩 : 천 봉우리 일제히 솟아 장대하게 우뚝하고

億丈高柟碍日華 : 수억 길의 높은 녹나무가 햇빛을 가렸구나.

碧澗誰令漫白石 : 푸른 시내엔 누가 백석을 널어놓게 했는지

蒼苔仍復藉紅花 : 푸른 이끼 깔린 곳에 붉은 꽃이 낭자하네.

如拳肥蕨猶堪豆 : 주먹만큼 살찐 고사리 접시에 올릴 만하니

通印文魚且莫叉 : 도장 찍은 듯한 문양의 물고기 잡지 말게.

鐵笛一聲山竹裂 : 쇠 피리 한 곡조에 산죽이 찢어질 듯하고

諸天仙侶舞傞傞 : 하늘의 신선들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하네.

 

吾股酸哀吾脰勞 : 내 다리 저리고 시리며 목덜미도 뻐근하고

眼和心地共蕭騷 : 눈과 마음 모두 쓸쓸하여 처량하기만 하네.

高江霆闘群巒殷 : 높은 강물 요란하고 뭇봉우리는 성대하며

珍木陰繁萬吹嘷 : 진귀한 나무 무성하여 온갖 소리 들려오네.

此日恣探眞佛界 : 오늘 참된 부처의 세계를 마음껏 둘러보니

一生虛惱軟塵囂 : 일생의 허튼 번뇌 작은 티끌처럼 소란하네.

雲衣霞餐從此足 : 구름옷 입고 노을 먹으면 그로써 족하리니

誓解銀章券外抛 : 맹세코 수령 인장 풀어 문서 밖으로 던지리.

 

 

▶ 유몽인의 於于集後集卷之六 / 雜識 / 遊頭流山錄

 

谷中有兩三人家 號嬴代村 鷄鳴犬吠 在幽谷亂峰之間 眞一桃源也 村之得名 有以哉 至一處 高岡急峽 拓兩厓而深其中 其中皆全石 溪上多大石羅列 名曰黑潭 余笑曰世有愛丹靑繪畫 盡其人工 嘗以爲奢 今見此地 石旣白則苔胡然而靑 水旣綠則花胡然而紫 天工亦太奢 而享其奢者 山之靈乎 於是使祿福彈琵琶 生伊吹篴 從壽 靑丘 吹太平簫山有花之曲 山鳴谷應 與澗聲相和 可樂也 使小童開筒供墨筆 題詩巖石上 [원문 출처 : 고전번역원]

 

골짜기에 두세 집이 있는데 영대촌(嬴代村)이라 하였다. 닭이 울고 개가 짖는 마을로, 깊은 골짜기와 많은 봉우리들 사이에 있었다. 참으로 하나의 무릉도원이었다. 이 마을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한 곳에 이르니 높은 언덕에 가파른 협곡이 나타났다. 양쪽 언덕으로 길을 내놓았는데 협곡이 매우 깊었다. 그 협곡 안은 모두 돌이었다. 시냇가에도 큰 돌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이곳의 이름을 흑담(黑潭)이라 하였다. 나는 웃으며 말하기를,“세상에 단청(丹靑)의 그림을 좋아하여 자신의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 화려하게 꾸며놓은 사람이 있었다네. 지금 이곳을 보니, 돌이 희면 이끼가 어찌 그리 푸르며 물이 푸르면 꽃이 어찌 그리도 붉은가? 조물주도 한껏 화려함을 뽐냈으니 그 화려함을 누리는 자는 산신령인가?” 라고 하였다.이에 녹복(祿福)은 비파를 타게 하고, 생이(生伊)는 젓대로, 종수(從壽)와 청구(靑丘)는 태평소(太平蕭)로 산유화(山有花)의 곡을 불게 하였다. 음악이 산골짜기에 울려 메아리치고, 시냇물 소리와 서로 어우러지니 즐거워할 만하였다. 어린아이에게 통을 열어 먹과 붓을 준비하게 하고, 암석 위에서 시를 지었다.<한국문화콘텐츠닷컴>

 

 

흑담(수월대)
수월대
황계폭포
와불산과 미타봉
금대산
세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