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기담(妓潭)의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석각

도솔산인 2021. 8. 27. 10:13

기담(妓潭)의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석각

 

 

기담(妓潭)의 지명은 1611년 유몽인(柳夢寅)의 유두류산록과 1651년 오두인의 두류산기에 등장한다. 유몽인의 유듀류산록에는 기담(妓潭)과 사정(獅頂), 오두인의 두류산기에는 기담(妓潭)과 사자곡(獅子谷)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명에서 사자목(獅子項)은 사람이 겨우 비켜갈 수 있는 바위 벼랑의 좁고 험한 길이다. 사정(獅頂)은 사자곡(獅子谷) 벼랑길에서 고개이다. 의신 마을 주민들은 사정(獅頂)를 '사지 고개', '사징이 고개', '사지넘이 고개'라고 부른다. 서산대사길은 신흥교에서 의신마을까지 이어지는 옛길 구간 4.2km를 말한다. 사자곡(獅子谷)은 서산대사길 초입 벼랑 구간을, 사정(獅頂)은 자연석 의자가 있는 낮은 고개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정(獅頂)에서 조금 내려서면 계곡에 넓은 반석(盤石)과 담(潭)이 있는데 이곳을 기담(妓潭)으로 추정한다. 이곳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었던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1874~1948)의 석각이 있다.

 

 

☞ 김석곤(金晳坤, 1874~1948)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천안(薦按), 호는 동초(東樵) 또는 눌어(訥語). 본관은 김해이고, 전북 태인(泰仁) 출생. 부친은 김연추(金演秋).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수당(秀堂) 김교윤(金敎潤)과 교유.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며 바위에 글씨를 새기기를 즐겨, 내장산 서래봉 불충암(佛充庵)의 뒤쪽 바위에는 ‘내장 풍악(內藏楓嶽)’, 정읍두승산 정상에는 ‘수두목승(水斗木升)’이라고 새겼다. 또 칠보산(七寶山)에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상두산(象頭山)에는 ‘산명수류(山明水流)’, 백운대(白雲臺)에는 ‘유수불부(流水不腐)’라고 새겼다. <출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_한국학 중앙연구원>

 

 

사자곡 초입
사정(사지너미고개)
기담
性者心之理 心者性之器(동초 김석곤의 성명이 없다.)
秀堂 金敎潤, 雲樵 高炳斗, 金彰坤

 

 

一經一緯有誰知 : 날줄이 하나이면 씨줄도 하나임을 누가 있어 알겠는가
雖由縱橫亦不知 : 비록 종횡으로 오고 가더라도 또한 알지 못할 것이네
疑惑人人莫深究 : 의심하고 수상히 여기는 사람들아 깊이 연구하지 마소
相從織者自然知 : 베 짜는 이와 친하게 지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네


東樵又題 동초가 또 짓다.[펌]

 

 

頭流萬疊 東樵金晳坤書 乙丑九月 : 만겹의 두류산(첩첩 산중 두류산) 동초김석곤서 을축(1925년)9월

 

▶ 頭流萬疊山(두류만첩산)과 頭流萬疊(두류만첩)

 

頭流萬疊(두류만첩)은 석각이 마모되어 마지막 글자의 판독이 불가능하다. 頭流萬墨(두류만묵)은 어휘가 생경스럽다. 화개면지의 설명(지리산의 모든 시서를 대표한다는 뜻인지 '두류만묵頭流萬墨'이라 했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두류산을 찾아오는 많은 소인묵객(騷人墨客)'이라는 의미인가. 개인적인 생각은 頭流萬疊(두류만첩)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뇌계(㵢谿) 유호인(兪好仁)과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의 시에 頭流萬疊山(두류만첩산)과 頭流萬疊(두류만첩)의 시어가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담(妓潭)에서 영신봉이 보인다.

 

 

 

▶ 붙임 참고 자료(유람록과 관련 시)

 

1. 1611년 유몽인(柳夢寅)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 4월 6일 을해일. 드디어 홍류동(紅流洞)으로 내려가 시내를 따라갔다.[遂下紅流洞. 竝溪而行.] 시냇가에 불룩 나온 높은 언덕이 보였는데, 의신사의 승려가 사정(獅頂)이라고 하였다. 푸른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맑은 시냇가로 가서 초록 이끼를 깔고 앉았다. 이에 비파로 영산회상(靈山會上)과 보허사(步虛詞)를 연주하고, 범패(梵唄)로 그에 맞춰 춤을 추고, 징과 북의 소리가 그와 어우러졌다. 평생 관현악을 들어보지 못한 깊은 산 속의 승려들이 모두 모여들어 돋움 발로 구경하며 신기하게 여겼다. 기담(妓潭) 가로 옮겨 앉으니 고인 물은 쪽빛처럼 새파랗고, 옥빛 무지개가 비스듬히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거문고, 비파 같은 소리가 숲 너머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른바 홍류(紅流)사영운(謝靈運)의 시 돌층계에서 붉은 샘물 쏟아지네石磴射紅泉라는 구절에서 취한 것인데,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홍천(紅泉)은 단사(丹砂)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니 홍류라는 이름은 선가(仙家)의 책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지금 내가 기담(妓潭) 가로 옮긴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진경(眞境)이 허물을 뒤집어씀이 심하구나.이에 두 승려가 작별을 고하였다. 나와 순지는 이별을 애석해하였다. 그들을 데리고 함께 유람하고 싶었으나, 두 승려가 말하기를,합하를 모시고 내려가 시냇가에서 노닐고 싶지만 속세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꺼려집니다.”라고 하여서, 시를 소매 속에 넣고 떠났다.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니 두 사람의 지팡이가 나는 듯하더니 이내 그들의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이곳을 떠나 내려가다가 한 줄기 시냇물과 한 맑은 연못과 한 무더기 봉우리를 만나 바위에 걸터앉아 시를 읊조렸다.

 

注 영산회상(靈山會上) : 불교의 음악인 ‘영산회상곡’의 준말. 석가모니불이 설법하던 영산회의 내용을 노래한 곡으로 조선 세종 때 지은 것이다. 보허사 : 「보허자」의 다른 이름. 조선() 영조() 이후()부터 쓰였는 데, 순조() 때 이 이름의 거문고 악보()가 전()해져 「관악보허자」에 상대()하여 「현악보허자」라고도 함.

 

 

2. 1651년 오두인(吳斗寅)의 두류산기(頭流山記)

 

114, 그 해가 무오년(1618년)이라면 지금부터 30여년 전이다. 지난날의 장엄하고 화려한 사찰이 여우와 토끼가 노는 터로 바뀌었으니 참으로 30년 동안의 하나의 큰 변()이다.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구경하는 동안에 서러운 감회가 계속 일어났다. 절 앞의 계석은 산중에 으뜸인데 각은 '능파각'라고 하고 대는 '세이대'라고 한다.(寺前溪石. 甲於山中. 閣曰凌波. 臺曰洗耳)[수정] 계단 좌측에 동불상 하나가 가시덤불 사이에 서 있으며, 그 좌측에도 역시 이런 동불상 하나가 있다. 옛적에 절의 좌우에 나란히 세워 둔 것이다. 왼쪽으로 길을 틀어 뒷 산등성이 오르니 길이 더욱 험하고 산세가 더욱 기이하다. 사자곡(獅子谷)에서 10리 정도 가니 넓은 계곡에 물이 세차게 뿜어져 흘러 깊은 못을 하나 이루었는데 기담(妓潭)이라 한다. 바위를 쓸고 앉아서 데리고 온 기생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다. 함께 놀러온 여러 사람도 뒤이어서 모두 당도하였다. 서로 한 차례 씩 심호흡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3. 유호인의 登龜寺坦夷堂/일두의 遊頭流到花開縣/성여신의 崔文昌贊

 

登龜寺坦夷堂(등구사 탄이당)

 

                       유호인(兪好仁, 1445~1494)

 

好在頭流萬疊山 : 좋은 경치 만겹 두류산에 있기에

暫偸休暇此登攀 : 잠시 틈을 내어 여기에 올랐노라.

金堂玉室尋前約 : 금당과 옥실 옛 언약대로 찾으니

碧嶺丹崖摠舊顏 : 푸른 고개와 단애가 옛 안면일세.

歲聿蒼茫鴻北去 : 해가 저물니 기러기 북으로 날고

黃花搖落客南還 : 황국 질때 객이 남으로 돌아오네.

鑾坡遠與雲林隔 : 난파(鑾坡)가 멀리 운림(雲林)에서 떨어지니

兩地歸來鬢已斑 : 두 곳에서 돌아오니 머리가 이미 반백이네.

 

출처 : 㵢谿集卷之六 / 七言律詩

 

金堂 玉室 : 부처를 모신 법당, 鑾坡(난파)예문관(藝文館). 雲林(운림) : 평안북도 운산군 상원리의 동쪽 향산군과의 경계에 있는 마을.

 

이 시는 유호인의 뇌계집(㵢谿集) 6登龜寺坦夷堂偶得三律錄似主人(등구사탄이당우득삼율녹사주인)이라는 제목의 3수중 첫번째 시이다.

 

 

 

遊頭流到花開縣[두류산을 유람하고 화개현에 이르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540~1504)

 

風蒲獵獵弄輕柔 : 바람이 하늘하늘 부들 풀을 부드럽게 희롱하는데
四月花開麥已秋 : 4월 달 화개 고을은 보리 이미 거둘 때였네.
看盡頭流千萬疊 : 두류산 천만 첩을 다 구경하고 나서는
扁舟又下大江流 : 한 척의 돛단배로 또 큰 강 따라 내려간다네.

 

 

 

崔文昌贊(최문창찬)

 

                    성여신(成汝信, 1546~1632)

 

風儀秀麗 : 풍모와 위의가 수려하며

精敏好學 : 정밀하고 민첩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네.

仙風超塵 : 신선의 풍치는 풍진을 초탈하고

道骨脫俗 : 도인의 풍골은 세속을 벗어났네.

十二入唐 : 열두 살에 당나라에 들어가

尋師問業 : 스승을 찾아 학업을 물었네.

十八登第 : 열여덟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歷授華職 : 화려한 관직에 두루 제수되었네.

草檄高幕 : 고변의 군막에서 격문을 지으니

老賊裭魄 : 늙은 도적은 넋이 달아났다네.

文章耀世 : 문장은 세상에 빛나고

名振中國 : 이름은 중원에 떨쳤네.

奉詔東還 : 조서 받들고 신라로 돌아오니

年二十八 : 당시 나이 이십 팔세였네.

遭時昏濁 : 시대를 만난 것이 혼탁하여서

無處寄跡 : 자취를 맡길 거처가 없었네.

倻山千丈 : 천 길 높은 가야산에 들어가고

頭流萬疊 : 만 겹 깊숙한 두류산에 의탁했네.

蟬蛻塵紛 : 어지러운 속세에서 허물을 벗고

嘯詠雲壑 : 구름 낀 골짜기에서 시를 읊었네.

題詩石古 : 시를 새긴 바위는 오래되었고

四字門矗 : 넉 자 새긴 석문은 우뚝하구나.

遺風仙跡 : 남긴 풍도와 신선의 자취

千載如昨 : 천 년이 지나도 어제 일 같구나.

 

출처 : 부사집 제4東方諸賢贊 1632(壬申) 二十首

 

 

 

※ 注意 저의 주관적인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