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어우당길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흑담과 환희령(210202)

도솔산인 2021. 2. 2. 21:00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흑담과 환희령(210202)

 

 

▣ 일 시 : 2021년 02월 02일

▣ 코 스 : 소동폭포 우회길-환희령-흑담-도탄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어우당 유몽인은 1611년 2월 초에 용성(龍城, 남원) 군수로 부임한다. 한식(2.23)이 가까울 무렵 용성(남원) 목동 선영에 성묘를 온 승주(昇州, 순천) 군수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을 재간당에서 만나 지리산 유람을 약속한다. 3월 27일(양 5.월 9일) 유영순을 만나 28일 진사 김화(金澕)의 재간당(在澗堂)에서 1박을 한다. 29일 재간당을 출발하여 요천을 거슬러 반암(磻巖)과 황산 비전(碑殿)을 거쳐 백장사에서 하루를 묵는다. 유람에 동행한 사람은 용성(龍城) 수령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승주(承州) 수령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 재간당(在澗堂) 진사 김화(金澕), 생질 신상연(申尙淵), 신제(申濟) 운봉(雲峰) 수령 백소(伯蘇) 이복생(李復生)으로 모두 6명이다. 유두류산록에 4명의 악공의 이름[녹복(祿福), 생이(生伊), 종수(從壽), 청구(靑丘)]이 나온다. 재간당에서 수레를 타고 출발했으나 인월을 지나서 길이 거칠어지자 남여로 옮겨 타고 백장사로 들어간다.

 

작년 11월 21일 백장사에서 황계폭포(빗기재 폭포?)까지 대략의 루트를 확인했지만, 흑담과 환희령에 막혀 해를 넘겼다. 얼마전 산친이 유몽인 루트 지도를 보내와 정리를 하면서 카톡으로 흑담과 환희령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20명 가까운 유몽인 일행이 남여를 타고 걸어간 길은 틀림없이 마소가 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오늘 아침 산친 ○○님의 call을 받고 지목이 도로인 산내면 부운리 650번지와 부운리 660번지를 잇는 환희령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650번지의 도로 지적도를 따라 능선에 올라섰다. 이곳 사면은 중장비로 밭을 일구어 고사리와 엄나무가 심어져 있고 길의 흔적이 거의 없다. 다행스럽게 지능선에서 실계곡까지 길의 흔적을 확인하고 하부운 마을로 향했다. 부운리 660번지 지적도의 길이 살아있다. 첫 모랭이에서 등고선을 따라 옛길의 흔적이 확연하다. 서너개의 작은 모랭이를 돌아가니 옛마을터인듯 축대 아래로 길이 이어진다. 척박한 비알에 삶의 둥지를 틀었던 이들은 누구일까. 길은 650번지에서 올라왔던 지점으로 길이 연결된다. 지적도를 확인하니 산길이 아래와 위의 임야 경계이다. 하부운 마을로 돌아나오면서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단 한번 등장하는 환희령은 어디인지. 모랭이를 올라서서 시야가 터지는 곳이 환희령일까.

 

 

■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 41일 경오일(양력 5월 12일)동행한 사람들은 각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고 새끼로 동여매고서 남쪽으로 하산하였다. 물가 밭두둑을 따라 굽이굽이 난 길을 가니 큰 냇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황계(黃溪)의 하류였다. 동네가 넓게 열리고, 돌이 구를 정도로 물이 세차게 흘렀다. 북쪽은 폭포이고 아래쪽은 못인데, 못 위의 폭포수는 노하여 부르짖는 듯 쏟아져 내리며 벼락이 번갈아 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 얼마나 장대한 모습인가. 길을 가다보니 푸른 소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철쭉은 불타듯이 붉게 피어 있었다. 남여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고 서서 쉬었다. 골짜기에 두세 집이 있는데 영대촌(嬴代村)이라 하였다. 닭이 울고 개가 짖는 마을로, 깊은 골짜기와 많은 봉우리들 사이에 있었다. 참으로 하나의 무릉도원이었다. 이 마을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한 곳에 이르니 높은 언덕에 가파른 협곡이 나타났다. 양쪽 언덕으로 길을 내놓았는데 협곡이 매우 깊었다. 그 협곡 안은 모두 돌이었다. 시냇가에도 큰 돌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이곳의 이름을 흑담(黑潭)이라 하였다. 나는 웃으며 말하기를,“세상에 단청(丹靑)의 그림을 좋아하여 자신의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 화려하게 꾸며놓은 사람이 있었다네. 지금 이곳을 보니, 돌이 희면 이끼가 어찌 그리 푸르며 물이 푸르면 꽃이 어찌 그리도 붉은가? 조물주도 한껏 화려함을 뽐냈으니 그 화려함을 누리는 자는 산신령인가?” 라고 하였다. 이에 녹복(祿福)은 비파를 타게 하고, 생이(生伊)는 젓대로, 종수(從壽)와 청구(靑丘)는 태평소(太平蕭)로 산유화(山有花)의 곡을 불게 하였다. 음악이 산골짜기에 울려 메아리치고, 시냇물 소리와 서로 어우러지니 즐거워할 만하였다. 어린아이에게 통을 열어 먹과 붓을 준비하게 하고, 암석 위에서 시를 지었다.황계 폭포(黃溪瀑布)를 지나 환희령(歡喜嶺)을 넘어 이어진 30리 길이 모두 푸른 노송나무와 단풍나무였으며, 비단 같은 날개를 가진 새들이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다녔다. 내원(內院)에 이르니 두 줄기 시냇물이 합쳐지고, 꽃과 나무가 산을 이룬 곳에 절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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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동폭포 우회 우마길

 

유인김해김씨지묘
소동폭포 우회길(우마길은 포장도로 따라 우측으로...아래로도 솔밭 무덤에서 수평으로 허리길이 있으나 우마 이동 불가능함)

 

2. 흑담(수월대?)

 

한 곳에 이르니 높은 언덕에 가파른 협곡이 나타났다. 양쪽 언덕으로 길을 내놓았는데 협곡이 매우 깊었다. 그 협곡 안은 모두 돌이었다. 시냇가에도 큰 돌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이곳의 이름을 흑담(黑潭)이라 하였다. 나는 웃으며 말하기를,“세상에 단청(丹靑)의 그림을 좋아하여 자신의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 화려하게 꾸며놓은 사람이 있었다네. 지금 이곳을 보니, 돌이 희면 이끼가 어찌 그리 푸르며 물이 푸르면 꽃이 어찌 그리도 붉은가? 조물주도 한껏 화려함을 뽐냈으니 그 화려함을 누리는 자는 산신령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녹복(祿福)은 비파를 타게 하고, 생이(生伊)는 젓대로, 종수(從壽)와 청구(靑丘)는 태평소(太平蕭)로 산유화(山有花) 곡을 불게 하였다.(수정) 음악이 산골짜기에 울려 메아리치고, 시냇물 소리와 서로 어우러지니 즐거워할 만하였다. 어린아이에게 통을 열어 먹과 붓을 준비하게 하고, 암석 위에서 시를 지었다.(題詩巖石上.)

 

가. 바위 위에 시를 쓸만한 장소(석각이 있음)

나. 여러명이 앉아서 악기를 연주할만한 장소

다. 물이 깊고 거뭇하여, 예로부터 비가 오기를 비는 곳

라. 黑潭(흑담) : 중국 장안(長安)의 남쪽에 있는, 중난 산(終南山) 기슭에 있는 못.

 

 

 

 

 

3. 환희령

 

황계폭포(黃溪瀑布, 橫溪?)를 지나 환희령(歡喜嶺)을 넘어 이어진 30리 길이 모두 푸른 노송나무와 단풍나무였으며, 비단 같은 날개를 가진 새들이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다녔다. 내원(內院)에 이르니 두 줄기 시냇물이 합쳐지고, 꽃과 나무가 산을 이룬 곳에 절이 세워져 있었다.

 

 

부운리 660번지(부운 마을에서 첫모랭이가 獅子項?)

 

길이 산죽밭 지능선으로 이어짐
중장비로 전답 개간함(지적도에 도로 부운리 660번지)
마을터
환희령(?)

 

4. 황계폭포

황계폭포

 

5. 도탄

桃灘

 

5. 유몽인길 추정로

 

 

7. 1917년 일제강점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