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김종직의 구롱(九隴) 길 방장문 석각 탁본(200709)

도솔산인 2020. 7. 16. 06:05

김종직의 구롱(九隴, 아홉 모랭이)길 방장문 석각 탁본(200709)

 

 

금년 3월 14일~15일 김종직 선생의 구롱(九隴, 아홉 모랭이) 길을 찾으면서, 점필재 길 복원의 속도를 더하였다. 5월 16일에는 구롱 길의 여덟 모랭이에서 조봉근 주무관이 방장문 석각을 발견하였다. 조박사는 완폭대와 은정대 오두인 석각을 발견하였고, 석각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7월 9일 탁본 사진을 보내왔고, 7월 12일 하동으로 내려가 탁본을 확인하였다.

 

 

▣ 일 시 : 2020년 5월 16일(토) 12:00경(발견)

▣ 장 소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구롱 길 중 여덟 모롱이)

▣ 좌 표 : E 127.741100, N 35.378400 고도, 1,097m

▣ 답사자 : 8명(조용헌 박사 외 역사문화조사단 7명)

 

 

방장문 탁본(200709)

 

1.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구롱길 여덟 모롱이에 있는 석각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의 오른쪽 상단에 丶(점주)가 더해진 글자는 이체자이다. 서예대자전에서 명나라 때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행서와 서자불명(書者不明)의 예서에 보인다. 방장문(方丈門) 필획의 주인과 석각의 연대는 미상임.

 

 

2. 方丈의 어휘에 대한 유래

 

1)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지리지」의 지리산에 대한 설명

"杜甫詩所謂方丈三韓外註及《通鑑輯覽》云: "方丈在帶方郡之南。是也。(두보의 시에서 말한 '방장산은 삼한 외지에 있다'라는 구절과 《통감집람》의 '방장산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

"杜詩有方丈三韓外之句。說者以爲三神山皆在我國。方丈卽智異山瀛洲卽漢挐山蓬萊卽金剛山也。"(두보의 시에 있는 '방장은 삼한의 외지에 있다'는 구절을 해설하는 사람들은 '삼신산은 모두 우리나라(조선)에 있다. 방장산은 지리산이며, 영주산은 한라산, 봉래산은 금강산이다.'라고 한다.)"

 

[출처] [관광자원해설] 국립공원 정리

 

 

3. 방장문 석각의 필획과 시기

 

1)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1923.04.01)

함양 군수 민인호가 함양명승고적보존회(보승회)를 조직하여 동군 유지 강위수(姜渭秀)는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하여 天王峯에 망해정(望海亭)을 짓고, 박노익(朴魯翊)과 영원사승(靈源寺僧) 일동은 제석당(帝釋堂)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李璡雨)와 벽송사승(碧松寺僧) 일동은 마암당(馬岩堂)을 건축 하였는데 두 곳이 모두 중봉이다.(兩處皆 中峯)

 

2)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

종자들이 말하기를, “전에 산에 오른 자들은 관을 벗고 나무를 끌어안고 바위를 끼고 간신히 나아갔는데 지금은 보존사(保存社 *함양명승고적보존회)의 힘으로 산아래 사람을 시켜 벌목을 하고 험한 곳을 고르게 한 덕분에 이 앞까지는 평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또 유산자들의 노숙을 생각하여 마암상봉제석당 등지에 판옥(板屋)을 세우고 풍우를 가리게 하였으니 혜택이 유산인에게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하였다.

 

3) 방장문 석각의 필획과 시기

① 書者不明, 석각 시기 미상, 석각의 상태가 깊고 양호함.

②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의 오른쪽 상단에 丶(점주)가 더해진 이체자.(왕양명 필체)

③ 1922년 보존사(保存社 함양명승고적보존회)에서 마암과 같은 시기에 새긴 것이 아닌가 추정함.

 

☞ 李璡雨(1897~1954) : 본관은 경주 자는 성유(性悠) 호는 은계(隱溪) 마천면 의탄리 의중마을 출신. 천석꾼의 부호. 의탄초등학교를 설립하는데 재산을 희사함. 1922년 함양명승고적보존회에서 이진우와 벽송사 僧이 마암에 마암당을 건축하고 벽송사에서 마암까지 등산로를 정비함. 도계공원에 마천면민이 세운 송덕비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