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불일폭포와 청학동 이야기(190803~04)

도솔산인 2019. 8. 4. 21:13


불일폭포와 청학동 이야기(190803~04)


▣ 일   시 : 2019년 08월 03일(토)~04(일)

▣ 코   스 : 쌍계사-불출암-영대암-옥소암-백학봉(비로봉)-상불암터(보조암터)-불일평전-㹳巖(오암)-청학연-불일폭포-청학봉(고령대)-대은암터-소은암-고령암터-쌍계사

▣ 인   원 :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8명

▣ 날   씨 : 찜통 더위



 지난 해 4월 말 조봉근 주무관과 완폭대 석각을 확인하러 가던 날, 1558년 남명 선생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㹳巖(오암)의 이언경과 홍연 각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는데, 조봉근 주무관이 오암을 '원숭이 바위'라고 하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남명 선생은 바위의 모양이 원숭이 머리의 형상으로 보고 원숭이오(㹳)를 써서 㹳巖(오암)이라고 하였으니, 사물을 보는 시각이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㹳巖(오암)


불일폭포(청학폭포)



 2년 전 어느 날 내 눈에 불일폭포가 청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보였고 고운 최치원과 청학동의 설화가 불일폭포의 청학 형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처럼 산을 읽는 것(讀山)은 여러 번 발품을 판 뒤에야 조금씩 나아갈 수 있으니, 전국에 산재해 있는 청학동과 학동지명의 출발점이 청학의 형상인 불일폭포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찾은 많은 선인들 중 하겸진(1899년)은 '알알이 튀어 오르는 구슬 멀리서 셀 수 있고, 훨훨 학이 날아 다니는듯한데 가까이 가니 아니구나.'라고 읊어 유일하게 불일폭포를 학의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海東故鑑禪師碑(해동고진감선사비) 전액


# 敭海東故眞鑑禪師碑(당해동고진감선사비) 篆額(전액) : http://blog.daum.net/lyg4533/16488156



㹳巖(오암)


 乙卯(1555년 명종10년)秋 李彦憬, 洪淵


원숭이바위(㹳巖)의 이언경과 홍연 石刻


강국년과 음식을 맡은 사람과 음식을 운반하는 종 등 수십 인이 후미 대열을 이루었다. 승려 신욱이 길을 인도하며 나아갔다. 사이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언경’, ‘홍연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㹳巖에 또한 시은 형제 라는 글자를 새겼으니, 아마도 썩지 않는 돌에 이름을 새겨 억만년토록 전하려 한 것이리라.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거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차하게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숲 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구한다. 이는 나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후세 사람들이 날아간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두예(杜預)의 이름이 전하는 것은 비석을 물속에 가라앉혀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업적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1558년 남명 조식선생의 유두류록]

 

姜國年. 膳夫. 僕夫運饋者數十人. 作後隊. 僧愼旭向道而去. 間有一巨石. 刻有李彦憬. 洪淵. 㹳岩亦有刻柿隱兄弟. 意者. 鑱諸不朽. 傳之億萬年乎.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㹳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杜預之傳. 非以沈碑之故. 唯有一段事業也.

 

* 두예(杜預, 222~ 284)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지냈던 두서(杜恕)의 아들이며, 자는 원개(元凱),  진나라의 장군이 되어 오나라를 정벌하고 중국 재통일에 기여함.




趙明師 : 조선 후기의 문신. 승정원 일기 등에 이름이 보임.


1807년 4월 4일(여정 3일째) <하익범>과 불일암을 찾은 趙明師에 대한 기록이다. 바위 한 쪽에 조명사(趙明師, 조복(趙濮))가 이름을 새겼다.(石面有趙明師題名)'<하익범>의 [遊頭流錄]


완폭대 각석


완폭대 탁본(지리산국립공원역사문화조사단180501)


# 1618년 양경우의 최치원 필적 완폭대(翫瀑䑓) 석각 위각설 : http://blog.daum.net/lyg4533/16488148



쌍계사 18현창수유적비

최석기 교수님의 안내로 쌍계사 경내에 있는 쌍계사 18현 창수유적비를 둘러보았다, 16세기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 혹은 사숙인들이 쌍계사를 방문한 정취를 한시로 남겨 놓았는데, 운자(,月)를 맞추어 18명의 선비들이 함께 창수했다. 비석의 첫 번째 인물 부사 성여신은 1565년과 1567년 사이 쌍계사에 들어와 겨우내 독서를 하고 이듬해 봄에 나갔다고 한다. 이 비석은 그 후손들이 1972년 건립한 것이다.

  


* 참고자료

1. 내원골 폐3암자(옥소·영대·불출) 관련 유람록 : http://blog.daum.net/lyg4533/16487925

2. 청학암, 지장암, 보조암과 상불암 불지령등 관련 자료 : http://blog.daum.net/lyg4533/16487952

3. 봄날 밤 소은암에서 노닐다 : http://blog.daum.net/lyg4533/16488146

4. 고령암지와 고령대를 찾아서 : http://blog.daum.net/lyg4533/16488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