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敭海東故眞鑑禪師碑(당해동고진감선사비) 篆額(전액)

도솔산인 2019. 5. 10. 08:52

 

 

최치원(崔致遠)의 필적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의 전액(篆額)

 

 

 진감선사비 전액 첫 글자인 敭[昜(양)+矢(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裵吉基는 이 자를 '敭'으로 보아 '揚'의 古字로 보았으며(裵吉基,『한국미술사』대한민국예술원, 1984,p264), 李智冠은 이 자를 '[昜+矢]'으로 보아 唐의 古字로 보았고(李智冠,『歷代高僧碑文 新羅篇』, 伽山文庫, 1994, p128), 孫煥一은 이 자를 '[矢+]'으로 보아 '傷'의 古字로 보고 있다,(孫煥一, 『孤雲書體硏究』1999)  최석기 교수님의 『한국인의 이상향 지리산 화개동, 2019』을 읽다가 진감선사비의 전액 첫 글자 '敭'를 '唐[昜+矢]'으로 설명하신 부분(p162)에 의문이 들어 메일로 질문을 드렸는데 즉답을 해주셔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敭[昜+矢=唐]                                         故      

 

 

 전액에 있는 '敭'과 '故'에서 '攵(攴)'의 자형은 일치한다. 卜과 又가 합쳐진 자형(攴)으로 누가 보아도 전액의 첫 자는 '敭' 字가 확실하다. 『한한대자전(단국대학교 刊)』에는 [昜+矢]과 [昜+失]이 唐의 이체자(古字)이고, 『고금이체자전(日), 雄山出版刊, 1980)』에는 唐의 이체자 '敭'를 '唐碧落碑有[昜+矢]'라고 설명하고 있다. 唐의 이체자(古字)로는 碭(무늬있는돌탕) 敭(당), 塘(못당), 堂(집당), 唐의 본래 자인 庚+口, 그 외에도 이체자가 더 있으며. 당시에는 '敭'이 唐의 이체자(고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자전에는 敭은 揚(양)의 古字로만 나온다.

 

 최석기 교수님의『지리산 화개동, 2019, p162』의 '비석 이름의 오류'를 읽어보면, 진감선사비 전액에 대해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진감선사비의 비석 이름에 해당하는 전액(篆額)에는 '당해동고진감선사비(唐海東故眞鑑禪師碑)'라고 되어 있다. 첫 번째  글자는 '당(唐)'의 고자(古字)로 '昜(양)'자와 +'矢(시)'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예전 사람들도 이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던 듯하다. 또한 이 전액은 전서(篆書)로 쓰여 알아보기 어려운 데다 너무 높아 멀리서 식별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유람록에 이 전액 글자에 대해 제대로 정확히 표현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1489년 유람한 김일손은 "그 비석의 전액(篆額)에는 '쌍계사고진감선사비(雙磎寺故眞鑑禪師碑)'라는 아홉 글자가 새겨져있었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이 말이 고사가 되어서 그런지 후인들은 모두 전액을 '쌍계사고진감선사비(雙磎寺故眞鑑禪師碑)'로 읽었다. 서체에 해박했던 유몽인은 "전액에 '쌍계사고진감선사비(雙磎寺故眞鑑禪師碑)'라고 쓰여 있었는데, 전서체(篆書體)가 기이하고 괴이하여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라고 술회하였으니, 대체로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전액을 바르게 읽지 못한 듯하다. 한편 조위한의 유람록에는 "전액에 '진감대사비명(眞鑑大師碑銘)'이라고 쓰여 있었다."라고 하여, 글자의 숫자도 맞지 않게 대충 써 놓았다.」 아무튼 쌍계사를 답사한 많은 선인들이 쌍계사 진감선사비의 전액을 명확하게 판독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 전액의 첫 글자를 ()으로 읽는 우를 범할 수 있으나, 탑신의 本碑(본비) 서두에 '有唐新羅國....'에서 '有唐'으로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전액에 '' 를 생략하고 대신 古字(異體字)()을 쓴 것으로 보인다. 비문의 서두에 쓰는 '有唐'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인 초월산대숭복사비 비문의 서두에도 '有唐新羅國初月山大崇福寺碑銘...'라고 썼으며, 신라부터 조선까지 일반적으로 비문을 지을 때 비문의 서두에 '有唐', '有宋', '有明' 등으로 쓰고 있다. 는 연호 앞에 붙이는 발어사(詞頭)로 쓰일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본다. ''를 붙이게 된 연원은 詩經書經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詩經 大雅 文士'有周不願 帝命不時'

 

 

 

 

 

 

海東故鑑禪師碑(해동고진감선사비)로 읽어야 한다.

 

 

昜(양)+矢(시)과 敭이 唐의 이체자(한한대자전 단국대학교 刊)



첫 글자가 '唐(당)'이 아닌 '敭(양)'으로 보이는데

좌측 故의 攴(攵칠복)이 敭의 오른쪽과 일치한다.

그러나 '敭'을 '揚'의 古字로 보면 안된다.

금석이체자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敭은 唐의 이체자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금석이체자전(日 雄山出版刊)

 

 

 

 

탑신의 本碑(본비) 서두에 '有唐新羅國'에서 '有唐'은 관용적으로 쓰이는 문구로....

진감선사비 전액에 有가 생략이 되고 唐 대신 이체자인 敭(당)을 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