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坐高臺(좌고대)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180808)

도솔산인 2018. 8. 8. 14:31

 

坐高臺(좌고대)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180808)

 

 

 좌고대는 실제로 시야가 트인 천왕봉부터 반야봉까지 지리의 동서남북을 조망할 수 있다. 좌고대에 오르면 기록을 보고 찾아가는 시간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선답자들이 영신사지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발표가 10년 넘게 지명에 대한 오랜 혼란을 빚어왔다. 감수재가 두류산일록에 云『무릇 천하의 만물 가운데 욕심을 가진 놈은 남에게 제압당하지 않은 놈이 없다.(凡天下之物。有欲者無不見制於人)』라고 하였다. 세석산장 앞 습지의 엉터리 영신사지와 가짜 청학연못이 국회 전자도서관에 전자문서로 보존된 박사 학위 논문 [조선시대 유람록에 나타난 지리산 경관자원의 명승적 가치 = (The)scenic site value of scenic resources in Mt. Jiri documented in the Joseon era travelling records / 상명대학교 이창훈 이용률 높음]에 버젓이 실려있으니, 문제의 파급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신들의 탐구 결과물을 점검하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리산 역사 문화복원은 먼저 지명의 오류를 바로잡는데 있다.

 

                       

坐高臺(좌고대)에 오른다.

 

                                丹砂泉(단사천)

 

어느 태고적부터 여기와 머물렀을까

하얀 아기 코끼리 한 마리, 반야를 향해 화석이 되어 있네

슬프지도 않은지 내리 감은 선한 눈빛 희미한 미소마저 머금었다

해가 뜨고 별이 지고 달이 스러지기를 몇 겁

 

얼마나 기다렸을까

굳어져 움직일 수 없는 작은 다리를 만져 주고

늘어지다만 부러진 상아의 아픔을 매만져 주며

말 걸어와 그 세월 헤아려 줄 이 찾아와 주기를

 

추강암에 올라 좌고대를 내려다본다

 

기쁨에 찬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 

천왕을 바라보며 긴 코를 치켜들고 파안대소를 하고 있네

입은 꼬리가 되고 꼬리는 기다란 코가 되어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구나

 

설의계산(雪衣鷄山) 가파른 산길 아래 어디쯤 

반야를 바라보며 숨 죽은 수행을 하던 어린 아기 코끼리 한 마리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스러지는 별빛과 달빛을 벗 삼아

마침내 다 자라 천왕을 향한 득도의 해탈을 이룬 채 서 있나니

 

고요히 합장하고 올라선 좌고대 

나는 오늘 보현의 마음을 얻었구나!

탁 트인 사방 천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나니

저 하늘은 바로 도솔천(兜率天)이 아니런가

 

반야 위로 鶴雲이 나르고

천왕 위로 燕雲이 떼를 지어 나르는데 

華雲은 꽃길을 만들어 환한 서방 정토로 인도하네

 

세상사 모든 일들 깃털처럼 가벼워라

잊고 잊혀지고 떠 오르지 않으니

마음속 온갖 미진 허공 속 먼지 되어 흩어진다네 

 

빈발(賓鉢)은 어느 곳에 머무시는고

저 멀리 빈발봉 엎드린 사자 위에 주무시는가

저 아래 영신대 아늑한 석가섭에 깃들어 계신가

 

속세를 멀리하고 마음의 때를 벗어

천추에 썩지 않고 후세에 전한다 하시더니

좌고도 좋고 비로도 좋고 영신도 좋아라

탐심이 절로 사라지니 마음 또한 저 홀로 한가롭다네

 

 

* 추강암 : 추강 남효온이 오른 좌고대 옆 더 높은 바위

* 설의계산(雪衣鷄山) : 비해당의 찬에 등장하는 눈 덮인 영신봉 (계족봉 또는 계족산)

* 빈발(賓鉢) : 영신대 석가섭에 깃든 가섭존자. 가섭의 인도식 이름(핏발라야나)을 한글로 표기

* 빈발봉 : 좌고대에서 바라보는 촛대봉. 엎드린 사자의 형상

 

 

# 단사천님의 '坐高臺(좌고대)에 오른다.'를 읽어보면 선인들의 유람록을 이해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설의계산(계족산)'이 '영신봉'이라고 하였고, 천왕봉 북사면 칠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미륵 바위(미래에 도래한다는 미륵불)를 물어오기도 하였다.

 

 

 

 

 

『좌고대에 올라 』단사천님

 

천왕봉 북사면 미륵바위

 

영랑대에서 줌인 사진(단사천님)

 

 

1. 14638월 이륙 선생의 유지리산록 

 

뒤쪽의 봉우리에는 기이한 바위가 돛대처럼 솟아 있는데 북쪽으로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 맞닿아 있고 상처럼 생긴 돌을 그 위에 또 이고서 반야봉을 향해 조금 기울어져 있다. 부여잡고 올라 사방을 향해 절하는 자는 근기가 잘 잡혀 있다고 여겨지는데 해낼 수 있는 자는 천 명 중에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이다.

 

後峯有奇石削立如檣. 北臨萬丈. 復戴小石如床. 向般若峯稍低. 人有攀緣而登. 四向拜者. 以爲根性. 然其能之者. 千百僅有一二.

 

 

 

 

 

2.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 8월 17, 신사일<중략>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네모난 돌이 얹혀 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 승려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인 옥곤(玉崑)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迦葉殿之北峯. 有二巖突立. 所謂坐高臺也. 其一. 下蟠上尖. 頭戴方石. 闊纔一尺. 浮屠者言. 有能禮佛於其上. 得證果. 從者玉崑廉丁. 能陟而拜. 予在寺望見. 亟遣人叱土之.

 

 

영신암 아리왕탑에서 바라본 좌고대와 추강암

 

 

3. 1487년 남효온 선생의 지리산일과 

 

10정묘일 <중략> 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 날 서쪽 방면은 전날보다 훨씬 청명하여, 서해와 계룡산 등의 여러 산을 두루 분별할 수 있었다.

 

十月丁卯朔. <중략> 余從伽葉殿後攀枝仰上一山. 名曰坐高臺. 有上中下三層. 余止上中層. 心神驚悸. 不得加上. 臺後有一危石高於坐高臺. 余登其石. 俯視臺上. 亦奇玩也. 義文坐臺下. 恐懼不得上. 是日之西面淸明. 倍於曩日. 西海及鷄龍諸山. 歷歷可辨.

 

 

추강이 올라간 바위에서 바라 본 좌고대

 

추강암 : 추강 남효온이 좌고대를 보기 위해 올라간 바위

 

4. 1489년 김일손 선생의 속두류록

 

○ 4월 24, 임자일. 영신사(靈神寺)에서 묵었는데, 이 절 앞에는 창불대가 있고 뒤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천 길이나 솟아 있어 올라가면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동쪽에는 영계(靈溪)가 있는데, 대나무 홈통을 따라 물이 흘러들었고 서쪽에는 옥청수(玉淸水)가 있는데, 매가 마시는 물이라고 승려가 말하였다. 북쪽에는 석가섭상이 있었다. 당 안에는 찬()이 적힌 가섭도(伽葉圖)가 있는데, 비해당의 삼절(三絶)이었다. 연기에 그을리고 비에 젖은 흔적이 있으나 이 진귀한 보물이 빈산에 버려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가져가려 하였다. 그러자 백욱이 말하기를, “사가(私家)에 사사로이 소장하는 것이, (어찌)명산에 공적으로 보관해두고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유람하며 감상하게 하는 것만 하겠습니까?”라고 하여 가져가지 않았다.

 

二十四日壬子. 宿靈神. 前有唱佛臺. 後有坐高臺. 突起千仞. 登而目可及遠. 東有靈溪. 注於剖竹之中. 西有玉淸水. 僧云鷹所飮也. 北有石迦葉像. 堂中有畫迦葉圖. 匪懈堂三絶. 煙煤雨淋. 惜其奇寶之見棄於空山. 欲取之. 伯勖曰. 私於一家. 曷若公於名山. 以備具眼者之遊賞也. 遂不取.

 

 

5.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45일 갑술일.<중략> 이어 만 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을 내려가 영신암(靈神菴)에 이르렀는데, 여러 봉우리가 안쪽을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이 마치 서로 마주보고 읍을 하는 형상이었다. 비로봉은 동쪽에 있고, 좌고대는 북쪽에 우뚝 솟아있고,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고, 가섭대(迦葉臺)는 뒤에 있었다.

 

甲戌.<중략> 仍降萬丈蒼壁. 靈神菴. 諸峯環拱面内. 如相向而揖. 毗盧峰在其東. 坐高臺峙其北. 阿里王塔樹其西. 迦葉臺壓其後. 遂投杖. 手足行陟毗盧峯上. 凜乎不可久留也. 菴有茶鼎. 香爐. 而不見居僧. 將樵蘇白雲而不知處耶. 抑厭避塵人而潛跡亂峯間耶. 節屆淸和. 始見杜鵑花半綻. 亦知山候稍暖於上峯也.

 

 

『현오와 걷는 지리산』의 저자 권태화 선생

 

 

 

지리산 병충해 도솔

 

여여산방(如如山房) 주인 이상운님

 

염정과 옥곤 역할을 한 송연목님과 상운님

 

 

 

추강암 위에서 바라본 좌고대

 

추강암에서 바라본 좌고대

 

완폭대 석각을 발견한 조봉근 박사와 한국화가 현석 이호신 화백

 

사진 순천 짝꿍님(191214)

 

 

 

드론 사진(출처 :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

 

 

 

 

*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세석 명소의 지명

구분 좌고대 석가섭 비로봉 창불대 영신봉 촛대봉 비고
1463/이 륙 奇石削立如檣 迦葉臺/迦葉石像 東有石峯. 如浮屠狀        
1472/김종직 坐高臺 石迦葉/迦葉殿   唱佛臺 雪衣鷄山 甑峰  
1487/남효온 坐高臺 迦葉殿     雞足峰 賓鉢峰 貧鉢庵/少年臺
1489/김일손 坐高臺 石迦葉像   唱佛臺      
1545/황준량   千尋迦葉   唱佛臺      
1611/유몽인 坐高臺 迦葉臺 毘盧峰     獅子峰 1851년 하달홍 中峰(중봉)
1879년 송병선 燭峰(촉봉)

 

 

 

* 세석평전의 지명에 대한 변천 과정

유람록 세석 명칭 음양수샘 비고
1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綠) 저여원(沮洳原)    
2  1545년 황준량의 금계집(錦溪集) 저여원(沮洳原)    
3  1851년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 적석평(積石坪) 외적평(外積坪)  
4  1871년 배찬의 유두류록(遊頭流綠) 세적평전(細磧平田)    
5  1879년 송병선의 두류산기(頭流山記) 세석평(細石坪) 외세석(外細石) 石泉(돌샘)
6  1903년 안익제의 두류록(遊頭流綠) 세석평전(細石坪田)    

☞ 여기에서 내세석(內細石)은 세석연못 근처 적석동(積石洞)을, 외세석(外細石)은 음양수샘 근처로 추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