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의 산중일기(불일암부분)

도솔산인 2018. 5. 15. 16:47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1652~1707)의 산중일기 영인본(불일암부분)



남원의 조선생님께서 우담 정시한 선생의 산중일기 중 1686819~20일의 영인본 자료를 보내주셨다. 

보조암 터중보조암 터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 영인본을 아래 한글로 옮기며 우담의 기록을 촘촘히 읽어보았다.



1686년 8월 19일~20일



1686년 8월 20일



# 1686년 우담 정시한(1652~1707)의 산중일기 불일암 부분


○1686819 새벽부터 종일 비

 <발휘심경> 15장을 보고 <독서록> 상중 2편을 보았다. <황정경> 외경 하편을 보고 상권을 마쳤다. 저녁밥을 지어서 제공한 자는 성욱수좌였다.

 

十九日 自昧爽雨終日 看發揮十五 張讀書錄上中二篇 再看黃庭下篇終上卷 炊夕飯饋旭首坐

 

820일 날이 갬

성욱이 아침을 준비하여 상하 모두에게 대접하였다. 남은 양미 1승 정도를 남겨 두고 아침 식사 후에 수좌와 함께 뒷 봉우리에 올라가서 보조의 터를 보았다. 대략 2리쯤 거리에 폭포수가 있는데 그 머리 위에는 청룡 변으로 이어지는 폭포수가 석담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 아래가 곧 불일폭포였다. 향로봉과 청학봉 등이 무릎 아래의 청룡 백호가 되니, 몸에 가까운(?) 안쪽의 용호 역시 매우 신기하였다. 갈산(葛山)이 고리처럼 둘러서 비어 있거나 흠이 있는 곳이 없었다. 암자 터가 평평하고 반듯하였으며 손방(巽方)에는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甘泉이 있고, 그 아래 중보조 터가 있었다. 나머지 기운이 불일암이 된 것이다. 앉아 있는 땅이 상무주암보다 높았으며 바람을 간직하고(*) 양지바른 데다 과목 채전까지 있고 또 토질도 좋았다. 보통 안목으로 보아도 지리산의 정맥인 듯하여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

 

二十日晴 性旭備朝食 而饋上下 留餘粮米一升許 朝食後 與首坐上後峰 見普照基 約二里許正在瀑㳍 頭上邊連 有瀑流石潭 其下即佛一瀑流也 香爐靑鶴等峰 爲膝下靑龍白虎 而身龍虎亦皆奇妙 葛山環擁無有空缺久闕 處菴基平正 巽方有大旱不渴之甘泉 其下中普照基 餘氣爲佛一坐地 高於上無主菴 而藏風向陽 亦有果木菜田 且土厚 凡眼所見以地異正脈愛玩不忍離

 

(*) 身 : 몸을 담은 널 안쪽의... 櫬 : 內棺 , 巽方 : 서북방  

(*) 藏風 : 풍수지리설에서, 바람이 운반하는 생기는 받아들이고 모인 생기가 바람에 의해 흩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

 

한동안 있다가 불일암으로 다시 내려와서 그대로 쌍계사로 내려오는데 중간에 천휘, 원식, 민혜 등이 와서 맞이하였다. 방장실에 도착하여 젖은 버선을 벗고 즉시 출발하였다. 옥헌 노장등 여러 승려가 석문 밖에서 작별하였다. 걸어서 냇가에 이르러 외나무다리를 건너 몇 리를 가서 말을 탔다. 민혜가 작별하고 갔다.

 

良久遠下佛一 仍下䨇磎 中路天輝垣湜敏慧等來迎 到方丈脫濕襪 卽發行 玉軒老長等諸僧別於門外 步至川邊越獨木橋 行數里乘馬 敏慧辭去

 



1686년 8월 21일


愚潭全集 影印本



정시한의 보조암 터에 대한 기록은 현장을 보는 것처럼 세밀하다. 작년 3월 11일 보조암 터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櫬身(몸을 담은 널 안쪽의...)'과 '巽方(서북방)의 甘泉', '藏風(바람이 운반하는 생기는 받아들이고, 모인 생기가 바람에 의해 흩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곳)'의 표현 등, 우담이 산수 읽는 탁월한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불암터는 고려시대부터 본래 보조암이었고 상불암이 폐사된 이후에는 다시 보조암으로 불렸다. 1487년 추강 남효온은 보주암(普珠庵)에 올랐는데, 바로 보주선사(普珠禪師)가 이곳에 거처하여 보주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보조암에서 조선 초기에는 보주암(1472년 남효온), 보조암(1632년 성여신), 보조암 터(1686년 정시한), 상불암(1699년 명안~1708년 김창흡)으로 불렀고, 1807년 남주헌의 자리산행기에서는 다시 보조암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눌보조국사의 시호가 불일로 불일암과 보조암은 하나의 세트로 굳이 논한다면 상불암 터보다는 보조암 터로 부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상불암터라고 한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