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佔畢齋와 感樹齋의 軌跡을 좇아서(160617~19)

도솔산인 2016. 6. 20. 23:16

 

佔畢齋와 感樹齋의 軌跡을 좇아서(160617~19)

 

 

▣ 일   시 : 2016년 06월 17일 ~ 19일

▣ 코   스 : 법전암 - 공개바위 - 군계능선 - 고열암 - 의논대 - 유슬이굴 - 선열암 - 독바위 - 새봉 - 사립재 - 오봉리

▣ 인   원 : 산친 3명

▣ 날   씨 : 맑음 18일 밤 비

 

 

 

# 1. 산행의 개요

 

 점필재 김종직선생은 1472년 8월 14일, 감수재 박여량선생은 1610년 9월 2일 138년 차이를 두고 각기 다른 곳에서 상봉을 향해 출발해서 계획한 산행을 마치고 불후의 유산기를 남겼다. 박여량선생은 점필재의 [유두류록]을 언급하면서 중복이 되는 부분은 기술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소상하지 않은 기록이 상류암에 대한 의문을 더하였다. 작년 추석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을 읽어보고 사립재에서 오봉리로 하산 코스를 잡았다.

 

 

 

오도재의 밤

 

十二覺詩碑[사진 도필락님]

 

 

                                 十二覺詩 - 靑梅禪師 

 

 

                               覺非覺非覺 :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覺無覺覺覺 :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이 없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네 

                               覺覺非覺覺 :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豈獨名眞覺 : 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요 

  

 

                            * 청매선사는 박여량선 생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도솔암의 인오스님이다.

 

 

 

 

 

 

 법전암

 

 

공개바위

 

 

# 2. 한국 피사의 사탑 공개바위

 

 사진으로만 보았던 공개바위는

곧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보다 힘이 용솟음치는 느낌을 받았으니

사물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법전암에서 식수를 지고 의논대까지 4km를 걸었다.

 

 

 

 

 

고열암

 

 

# 3. 폐사지 유두류기행시 속으로

 

김종직선생의 유두류기행시는 한 폭 순간 풍경이 들어있는 그림이다.

처음 '소나무 물결 달빛 아래 들끓는다.'는 구절은 숨을 멎게하였고

'하늘에 빗장을 지른 구름'과 선열암 암괴를 '구름의 뿌리'라고 하였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宿古涅庵(숙고열암) - 김종직(金宗直)

 

 

 病骨欲支撑(병골욕지탱) : 지친 몸 지탱하려고

 暫借蒲團宿(잠차포단숙) : 잠시 포단 빌려 잠을 자는데

 松濤沸明月(송도비명월) : 소나무 물결 달빛 아래 들끓으니

 誤擬遊句曲(오의유구곡) : 구곡선경에 노니는 듯 착각하였네.

 浮雲復何意(부운복하의) : 뜬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가?

 夜半閉巖谷(야반폐암곡) : 한밤중 바위 골짜기 닫혀있구나.

 唯將正直心(유장정직심) : 오직 올곧은 마음을 가진다면

 倘得山靈錄(당득산영록) : 혹시 산신령의 살핌을 얻으려나.

 

 病骨(병골) : 지친 몸, 蒲團(포단) : 부들로 만든 둥근 방석, 浮雲(부운) : 간신. 인생의 덧없음. 不義로 富貴榮達을 누림. 句曲(구곡) :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己山 또는茅山(모산)이라고 함. 巖谷(암곡) : 고열암, 將 : 持也(가질장), 倘 : 혹시당. 錄 : 省(살핌)也

 

 

 

     (*)贈古涅僧(고열암 중에게 주는 시) - 김종직(金宗直)

 

  

 求名逐利兩紛紛(구명축리양분분) : 명예를 구하고 이익을 좇는 것 둘 다 어지러우니

 緇俗而今未易分(치속이금미이분) : 지금은 승려와 속인을 구분하기 어렵구나.

 須陟頭流最高頂(수척두류최고정) : 모름지기 두류산 상봉에 올라보게나.

 世間塵土不饒君(세간진토불요군) : 세간의 흙먼지는 그대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네.

 

 ☞ 紛紛 : 어지럽다. 緇 : 검은옷치, 승복치, 승려, 중치

 

 

 

 

 

의논대에서 바라본 獨女巖

 

점필재 유두류기행시를 좇아서(120813~15)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金宗直)

 

 

 兩箇胡僧衲半肩(양개호승납반견) : 호로중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암간지점소림선)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사양독립삼반석)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에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만수천풍아욕선) : 소매 가득 가을바람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하네.

 

 兩箇 : 두사람. 胡僧 : 호승으로 국역했는데 정확한 설명이 부족함. 胡人 : 북방 서역의 이민족, 남을 업신여겨하는 말. 點 : 지점(장소) 한곳. 衲 : 장삼납. 箇 : 낱개 물건을 세는 단위. 2구 상내봉(와불산)을 소림선방으로 표현함.

 

 

 

선열암

 

점필재 유두류기행시를 좇아서(120813~15)

 

   

 

         先涅庵(선열암) - 김종직(金宗直)

 

 

 門掩藤蘿雲半扃(문엄등라운반경) : 문은 등나무 덩굴에 가리고 구름은 반쯤 빗장을 질렀는데

 雲根矗矗水冷冷(운근촉촉수냉랭) : 구름이 뿌리내린 우뚝 솟은 바위의 석간수는 맑고 시원하구나.

 高僧結夏還飛錫(고승결하환비석) : 하안거를 마친 고승은 석장을 날리며 돌아가고

 只有林閑猿鶴驚(지유임한원학경) : 다만 숲은 한가로운데 은거하는 선비가 놀라는구나.

 

 

 掩藤 : 등나무 扃 : 빗장경 닫을경. 矗矗 : 우뚝솟을 촉. 冷冷 : 맑고 시원하다. 結夏 : 하안거를 마침. 錫 : 錫杖, 禪杖 도사 승려가 짚는 지팡이 只 : 다만, 猿鶴 : '원숭이와 학'의 의미는 猿鶴沙蟲(원학사충)의 준말로 은거하는 선비를 이르는 말. 주목왕周穆王의 군대가 몰살되어 군자는 죽어서 원숭이나 학이 되고 소인은 죽어 모래나 벌레가 된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4. 비내리는 새봉의 밤

 

곰샘에서 취수를 하여 138년 시공을 초월하여 두 분이 만났을 새봉에서 자리를 잡았다.

태극의 길목이라 밤에 손님이 지나갈 길을 열어놓았으나 종무소식 태극 전사는 없었다.

날이 저물자 細雨가 내리더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타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생경스러웠다.

 

아침에 날이 개고 사방이 구름 바다이나 조망터가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永郞齋

 

 

 

 

# 5. 草嶺에서 方谷上溪까지

 

 초령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사립재, 새재, 심지어 외고개까지 거론되고 관심있는 분들의 답사가 이어졌다.

 

'초령은 함양과 산음으로 두 갈래 길이 동쪽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곳이다.'

田이 淮南子에서 東方이라는 의미이니 草嶺은 사립재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단정할 수 없지만 방곡의 상계[方谷之上溪]는 오봉리 민박 마을로 추정된다.

화전민들이 농사를 짓기위해 소가 출입하였을 터이니 말도 올라갈 수 있었다.

 

붉은 글씨가 누락 부분이다. 

 

 

○7일 무신일 맑음. [1610년 10월 23일 土 霜降]

草嶺。此乃咸陽山陰兩路之所田分也。沿路多見五味子。令從者或取008_484a其蔓。或取其實。先至溪石可坐處。又命取山葡萄。以俟諸君。溪澗巖石。可濯可沿者。非一二矣。[누락부분]下至方谷之上溪。奴輩以馬來待矣。臨溪而坐。各罷鎭心。舍輿乘馬。過方谷村。村舍皆負竹爲家。繚以柿木。鷄鳴犬吠。洽一別境也。

 

 령(草嶺)을 넘었다. 이곳은 바로 함양과 산음(山陰)으로 두 갈래 길이 동쪽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 오미자가 많이 보였다. 따라온 자들로 하여금 넝쿨을 뜯고 그 열매를 따게 하고서, 나는 먼저 시냇가의 앉을 만한 반석으로 갔다. 또한 따라온 자들에게 산포도(山葡萄)를 따오게 하고, 나는 반석 위에서 여러 사람들을 기다렸다. 몸을 씻거나 거닐며 소요할 만한 시내와 바위가 어우러진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누락부분]방곡의 上溪까지 내려오니 종들이 말을 가지고 와서 기다렸다. 시냇가에 앉아서 각각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을 마치고 남여를 버리고 말을 탔다.[下至方谷之上溪。奴輩以馬來待矣。臨溪而坐。各罷鎭心。舍輿乘馬。] 방곡촌(方谷村)지나는데 마을의 집들은 다 대나무를 등지고 집을 지었으며 감나무로 둘러 싸여있고 인가와 접하였으나 두루 속세를 벗어난 지경과 같았다. [村舍皆負竹爲家。繚以柿木。鷄鳴犬吠。洽一別境也。]

 

  * 注 : 東方爲田. 曰天田

 

 

 

 

 

廢獨家

 

 

 

 

이곳이 방곡의 상류를 두 번째 건너는 곳이다.

[두류산일록]에는 이곳을 건너며

'시냇가의 앉을 만한 반석으로 갔다.'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나 또한 감수재의 말대로 “다만 세상에서 전하는 대로 보는 것이 옳지,"

"어찌 다른 의견을 낼 필요가 있겠는가?”[第依世俗所傳而觀之可也。 何必生異議乎。]

 

요양차 이곳에 들어와 비닐 움막에 산지 3년이 되었다는 분에게 상추와 고추, 된장까지 얻어서 점심을 먹었다.

 

 

 

 

도솔산 연소재

 

 

하산을 한 후 롯지에 들러 마야고님께 상품을 수령했는데 손이 오그라 들었다.

과태료를 수 없이 냈어야할 사람이 도리어 賞을 받았으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연소재에 돌아와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엄뢰대 錦麟魚까지 다시 읽어보았다.

錦鱗魚가 맞는지 錦麟魚인지 모르지만 쏘가리 문양이 麒麟 문양이라는 사실이다. 

 

 

 

# 에필로그

 

산행계획 방을 보니 지난해 10월 계획을 세우고 반 년만에 산행을 했더라.

 

'踰草嶺。此乃咸陽山陰兩路之所田分也'

 

초령을 넘었다. 이곳이 바로 함양과 산음 두 길이 동쪽으로 나누어지는 곳이다.

참고로 당시 지명은 새재 북쪽은 산음현, 남쪽은 단성현, 사립재 동쪽은 산음현, 서쪽은 함양이다.

아무튼 田分을 고을의 경계로 본다면 초령이 새봉과 사립재로 좁혀진 셈이다.

 

박여량이 [두류산일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쓰려고 애쓴 흔적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나는 田을 '東方'이라는 의미로 보았다. 제대로 읽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두류기행시의 해석도 제멋대로이니 江湖諸賢님들께서는 마음에 담지 마시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