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추억산행

설악 가야동계곡&마등령I(070815~17)

도솔산인 2012. 8. 29. 09:36

 

설악 가야동*공룡&서북능선과 흑선동 탐방I (070814~17)


 ▣ 일   시 : 2007년 8월 14일(화) ~ 8월 17일(금) 

 ▣ 산행지 : 설악산(가야동 계곡, 공룡&서북능선, 흑선동 계곡) 일원

 ▣ 인   원 : 5명(산인, 청량초인, 자히르, 산수벽, 予)

 ▣ 일   정

    * 0일차(14일) : 대전(20:00)-용대리(24:30도착/박)

    * 1일차(15일) : 용대리(07:00)-백담사-수렴동대피소-가야동계곡-천황문-오세암-마등령(15:55/박)

    * 2일차(16일) : 마등령(07:08)-나한봉-1275봉-신선봉-희운각-소청-중청-끝청-한계령갈림길-막영지(16:30/박)

    * 3일차(17일) : 귀때기청봉(07:00)-1408봉-대승령-흑선동-백담사-용대리(16:00) 

 

 ▣ 0일차(8월14일/화)

 어느 날 청량이 '뱃살을 빼야 한다'며 서북을 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휴가 일정을 맞춥니다. 산인이 계획을 세우고 블러그를 통해 일정과 준비물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출발 전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부식과 먹거리를 점검합니다.  

 네시간을 넘게 빗길을 달려 용대리에 도착하니 자정을 넘은 시간입니다.

 ▣ 1일차(8월15일/수)

 7시에  첫 차를 타고 백담사를 향합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계곡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백담사에 도착 경내에 들어가지 않고 화장실 근처에서 배낭을 내려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화장실은 겨울에 따뜻한 휴식처이지만, 사찰 식당은 지나가는 산객에게 따뜻한 물 한 모금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 인색한 곳입니다.  

 냇물을 건너 탐방로에 접어드니 매미소리 귓전을 울리고,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교각을 위에 원목을 깔아 비단길과 같습니다.  

 수렴동 산장은 작년의 수해로 매점 건물이 떠내려갔고 계곡 주변은 형태가 완전히 변해 있습니다. 산장 건물 뒤채는 철거하였고, 그 자리에는 화장실을 새로 지었습니다. 산장주 이경수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니 고맙게도 손수 커피를 타주십니다.  

 가야동은 평소보다 수량이 조금 많습니다. 죽음의 계곡에서 발원 희운각에서 수렴동에 이르는 가야동은 수많은 소와 폭포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폭포를 만나면 간혹 우회하기도 하지만 주로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라갑니다. 

 

 

 

천황문

 

- 설악산 가야동 천황문에 묻힌 유골 이야기 -

 

 정말 좋은 일을 하신 <송병기>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그래도 세상은....

 

 2006년 10월 등산객이 붐비던 수렴동 가는길에 70대 쯤 노부부가 배낭을 메고 두리번거리며 안스럽게 등산객을 쳐다보며 무언가 말을 건내고 싶어하는 눈치가 보여 먼저 인사를 건내보니 아주 반갑게 기다렸다는 듯이 설악산을 오르는 사연을 이야기한다.

 

 20여년전 인하대에 다니던 아들이 산악부에 들어가 설악산 훈련을 하던 중 집중호우가 내리던 날 선배가 아들에게 일행이 저쪽으로 내려간 것 같다고 잘못 일러주었는데 일행은 천불동으로 하산하였고, 아들은 홀로 반대편인 회운각에서 가야동계곡으로 간 것이 화근이 되어 급류에 휩쓸려 수렴동 거의 다가서 천황문앞 계곡에 나무가지에 걸려 시신이 반쯤 묻혀있는 상태로 운명을 달리하여, 천황문 근처에 묻어주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노부부는 마음 편히 잘 수가 없어 이날 유골을 정리하여 화장시키려고 천황문에 올라가는 중이라고 사연을 털어놓는데, 칠순 부부가 무슨 힘이 있어 땅을 파헤칠 힘이 없어 부탁해보았으나 몇몇 등산객들이 외면하여 걱정이라고 이야기하길래 도와드리겠다고 하였는데 막상 걱정이 앞선다.

 

 수렴동에서 노부부와 같이 1박을 하고 새벽에 삽을 들고 가야동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천황문에 도착하니 묘자리는 간 데 없고 누군가 그 자리에 텐트를 쳤는지 맨들맨들하게 비박자리처럼 평평해져 노부부의 얼굴은 더 근심으로 가득차보였다. 두시간 묘를 파해치니 유골이 보이더니, 덜 썩은 자일과 등산화가 보이고 작업은 3시간만에 끝을 내고. 수습하고 난 후 그 자리를 원상복구 후 소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이후 비박을 여기서 하지마라는 표시라고 합니다.

 

 수습을 하여 수렴동으로 내려와 점심을 같이 하고 난 후 다시 산행을 해야하는데 노부부가 눈치가 백담사 입구까지 유골을 운반해 주길 바라는 눈치 같아 이왕 발벗고 나선 길에 동행을 해주고 보니 산행은 이미 물건너간 것 같고 결국 속초 화장터까지 모셔드리고 돌아섰는데 노부부가 손에 10만원을 쥐어주는 게 아닌가, 안받겠다고 몇 번 거절했으나 고마움에 대한 성의로 주머니에 구겨넣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놓고 오늘 일과를 생각해보니 보람된 일을 한 것 같아 산행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평생에 한번도 오지 않을 일을 한 것 같아 잘한거야 스스로 되뇌이면서 오는 길은 왠지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아들의 죽음은 자신들이 20년 넘게 산을 즐기다가 아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아 산악부에 들어가서 사고가 나고나니 노부부의 자책의 말도 들어보고 노부부는 인공관절을 할 정도로 연골이 닳도록 등산을 다닌  등산의 오랜 배테랑이었습니다만 이후 깨달는 것은 등산도 즐기며 건강을 해칠 정도로 깊게 빠지다보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이후 산행은 안전산행과 무리한 운행을 안하는 쪽으로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은 윗글을 쓰고 난 후의 <송병기>님의 후기입니다.

 

 정확히 말씀을 드리자면 망자는 25년전 유명을 달리하셨고 인하대 전신인 인하공전 산악부 요원으로 현재 살아계시면 51세입니다. 인하대에서 묘비를 바위 위에 설치했고 매년 추도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금년 집중호우로 비석은 없어졌고 그 당시 인하대 산악부 팀원분들이 이 글을 보시면 학교에 통보하여 주시기바랍니다.

 

망자의 부모님은 대전에 살고 계십니다. 동생분은 한전 원자력부 부장님이시고요, 추모비를 다시 건립하여 주시는 것이 도의적으로 당시 팀원분들 도리이고 학교 도리입니다. 망자가 유명을 달리한 사연은 폭우 속에 산악부의 계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제공하였다 생각이 듭니다.

 

이후 부모님 연락이 와 알게된 사실은 유골은 부모님이 가야동계곡에 산골을 하였다고 합니다. 유골을 캐며 나 자신이 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늘 겸허한 마음으로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사망 당시 염을 해주시고 유골을 수습할 때 길 안내를 해주신 수렴동대피소 산장주인님과 산장주인 둘째 아드님의 도움도 아울러 감사드립니다.

 

글의 출처 -뽀루산방- 

 

 

 

 

 

 

 

 

 

 

 

 

 

 

 

 

 

 옥구슬이 흐르는듯한 계류와 물감을 타놓은 듯한 沼를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오직 자연만이 빗어낼 수 있는 선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습니다.

 

 

 

 

 

오세암&봉정암 구간에서 순례자 몇 사람을 만납니다. 오세암에서 마등령 오르는 길은 등산로 정비가 한창입니다.

 

 

마등령의 상징

 

 

 

   

마등령 돌탑은 철거되어 등산로 바닥돌 자재로 쓰인 듯하고,

남은 독수리 형상의 괴목은 돌탑의 흔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개속으로 속초의 야경이 보이는 마등령의 밤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