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345] 국화(菊花)
[번역문]
초목의 꽃들은 꽃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꽃 가운데에서 국화를 아주 귀하게 여긴다. 홍국과 백국이 국화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국화 가운데에서 황국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무릇 꽃은 모두 봄에 피는데 반해 오직 국화만은 서리 속에서 홀로 핀다. 군자의 절개가 그것과 비슷하다. 무릇 다른 국화는 모두 한쪽에 치우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직 황국만은 중앙의 정기를 받았다. 군자의 덕이 이와 같다. 그러니 꽃 가운데에서 어찌 국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으며, 국화 가운데에서 어찌 황국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꽃 가운데에서 국화를 몹시 사랑하고, 국화 가운데에서 황국을 특히 좋아한다. 그러나 국화는 꽃 가운데에서 얻기가 쉽지 않고, 황국은 국화 가운데에서 특히 더 얻기가 어렵다. 여기에서 천하에 소인은 많고 군자는 적다는 것을 알겠으며, 군자 가운데에서 덕을 이룬 사람은 더욱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또한 내가 듣건대, 꽃 가운데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드문데 국화가 먹기에 가장 좋으며, 꽃 중에 뿌리와 잎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은 없는데 국화는 뿌리와 잎을 모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또 군자가 모든 재주를 다 갖추고 있고 모든 학문을 다 갖추고 있어서 이로움과 은택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염계(濂溪) 선생이 일찍이 국화에 대해서 꽃 가운데 은일(隱逸)이라고 하였다. 염계 선생이 어찌 한갓 국화의 꽃이 귀하다는 것만 알고 뿌리와 잎이 좋다는 것을 몰랐겠는가? 아마도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바는 절개와 덕이며, 다른 것은 취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여긴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윤(伊尹)이나 여상(呂尙)이 이룬 사업(事業)은 소보(巢父)나 허유(許由)가 지닌 고풍(高風)에 비하여 볼 때 끝내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군자들은 역시 이를 알지 않아서는 안 된다.
[원문]
草木之花。無非花也。花必以菊爲貴。紅白之菊。無非菊也。菊必以黃爲貴。何也。凡花皆春開。而惟菊傲霜雪而孤芳。君子之節似之。凡菊皆偏色。惟黃禀中央之正氣。君子之德如之。花惡乎不以菊爲貴。菊惡乎不以黃爲貴。余於花之中甚愛菊。菊之中尤尙黃。而菊於花中未易得。黃於菊中尤難得。是知天下小人多而君子小。君子之中。成德者爲尤難。抑吾聞之。花之類可啖者少。而菊花啖之。最有益好。花無根葉之可啖者。而菊根菊葉俱可啖。此又君子之材全學備。利澤及人者也。濂溪先生甞言菊。花之隱逸也。豈先生徒知花之可貴。而不知根葉之美者耶。抑君子之所貴者節與德。而他不足取也耶。然則伊呂事業。終有愧於巢許高風。世之君子。亦不可不知也。
- 채지홍(蔡之洪, 1683∼1741), 「국설(菊說)」, 『봉암집(鳳巖集)』
▶정조필 국화도(正祖筆 菊花圖), 동국대학교 소장,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영조 때의 학자로,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칭해졌던 봉암 채지홍이 국화에 대해 쓴 글이다. 채지홍은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이를 모두 사양한 채 평생 동안 향리에 살면서 후진 양성과 저술 활동에 몰두하였던 인물로, 진정 국화를 닮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 글에 나오는 염계(濂溪) 선생은 송나라의 학자인 주돈이(周敦頤)를 가리킨다.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에서 “국화는 꽃 중의 은자(隱者)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자(富貴者)요, 연꽃은 꽃 중의 군자(君子)다.”라고 하였다. 이윤은 탕(湯) 임금을 도와 상(商)나라를 건국한 사람이고, 여상은 문왕(文王)을 도와 주(周)나라를 건국한 사람이다. 소보와 허유는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로, 요 임금이 천하를 양위하겠다고 하는 것도 사양한 채 산속에 숨어 살았던 인물이다.
채지홍은 이 글에서 국화의 모습이 군자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꽃과 잎과 뿌리를 먹을 수도 있어서 다른 꽃들에 비하여 더욱 귀하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국화의 효용이 단순한 감상용과 차를 만드는 데에 그치고 있지만, 예전 사람들은 국화를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애용하였다. 봄에는 국화의 움싹을 데쳐 먹었고, 여름에는 국화잎으로 쌈을 싸 먹었다. 가을에는 국화 꽃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고 술을 담그기도 하였으며, 겨울에는 국화 뿌리를 달여 마셨다. 감국 포기 밑에서 나오는 샘물을 국화수(菊花水)라 하고 국화꽃에 맺힌 이슬을 국로수(菊露水)라고 하면서, 이를 마시면 몸에 아주 좋다고 하여 즐겨 마셨다.
그러면서도 채지홍은 역시 국화가 다른 꽃들보다 귀한 것은 국화가 품고 있는 덕과 절개에 있다고 하였다. 이슬과 서리가 내려 뭇 꽃이 다 시든 뒤에도 고고하게 피어 있는 꽃과 드러내지 않고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로 인해 귀하다고 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황국이 귀하다고 하였다. 그 모습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군자의 덕을 닮은 것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국화가 지니고 있는 가치와 품격은 뭐니 뭐니 해도 꽃과 향기에 있다. 꽃 중에서 국화보다 아름답고 화사한 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국화처럼 뭇 꽃들과 다투지 않은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꽃은 없다. 그리고 국화보다 훨씬 짙은 향기를 내뿜는 꽃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국화처럼 자신의 향기를 은은하게 내뿜는 꽃은 없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국화를 특히 좋아하면서 가까이 두고자 하였던 것이다. 국화가 지닌 덕과 절개를 좋아하면서 그를 닮은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국제 관계도 그렇고 정치 상황도 그렇다. 그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온갖 분야에서 갖가지 갈등이 일어난다. 여당과 야당,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좌파와 우파 등등으로 나뉘어 서로 너니 내니, 가타부타하면서 아귀다툼을 한다. 각 개인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문제, 가족 간의 갈등, 교육과 취업, 어느 한 부분도 편한 구석이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잠시의 여유로움조차도 누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어느 정치가가 말한 ‘저녁이 있는 삶’은 아예 이룰 가망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잠시의 여유도 누리지 못한 채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에 휩쓸려 살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폐해진다. 생활에 매몰되어 왜 사는지조차 모르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10월은 집안 뜰이나 화원이나 공원이나 그 어느 곳이고 온통 국화 천지다. 곳곳에서 국화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국화의 계절이다. 이러한 때에는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국화를 감상하면서 늘 긴장해 있던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때에도 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국화를 감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성공을 하고 화려한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삶이 제대로 된 삶인지는 모르겠다.
국화를 감상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꽃과 향기만 감상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방도에 따라서 제대로 감상해야 한다. 국화를 보면서 꽃만 보고 향기만 맡는 데에서 그친다면, 이는 국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화가 지니고 있는 기품과 국화가 품고 있는 정신까지 느껴야만 한다. 국화가 품고 있는 군자다운 모습을 그려보고, 군자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와 닮기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다.
東籬有佳菊 : 동쪽 울에 아름다운 국화 폈거니,
英英黃金色 : 꽃마다 다 밝고 고운 황금빛이네.
天地旣鍾精 : 온천지의 정기가 다 모인 것이라,
霜露不敢逼 : 서리 이슬조차 감히 침범 못하네.
隱逸爾所性 : 은일이야 바로 너의 성품인 게고,
我本嗜淡泊 : 나는 본디 담박한 걸 좋아한다네.
嗜之知何爲 : 널 즐기되 어떤 점을 좋아하는가,
在德不在物 : 덕에 있지 꽃에 있지 아니하다네.
조선조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20여 년 동안이나 문형(文衡)을 잡고 있었던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울타리 가에 피어 있는 국화의 모습을 보고 읊은 시이다. 서거정은 이 시에서 자신이 국화를 좋아하는 것이 국화의 고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국화가 품고 있는 덕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이 좋은 가을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우리들의 일상이야 늘 복작대지만, 잠시나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밝고 고운 국화를 감상해 보자. 국화를 읊은 시도 한 수 읊조려 보자. 그러면서 서리와 이슬 속에 피어 있는 국화의 그 고고한 모습을 닮아 보려고 하자. 그러면 아마도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덕을 닦는 데에 있어서도 한 도움이 될 것이다.
注 : 이윤(伊尹)과 의약(醫藥) 이윤(伊尹)은 상 나라 때 재상이기 전에 그는 무사(巫師)였다. 상나라는 귀신을 숭상하던 나라였다. 그래서 국가의 대소사는 점복을 통해서 만 결정되었다. 제사 지내는 것도 점을 쳐서 지냈고 전쟁을 할 때도 점을 쳐서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巫師)들의 지위는 숭고하였다. 이윤(伊尹)은 상나라의 제일대무사(第一大巫师)였으며 상고(上古) 시대의 무사(巫師)는 무(巫)와 사(史)와 의(医)를 합하여 실행하였다. 무사(巫師)는 즉 백성들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를 겸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대의 무팽(巫彭)과 무함(巫咸) 등은 고명한 의술을 지닌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설문에 보면 ”윤(尹)”은”치(治)”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윤(伊尹)은 병을 치료하는 의사였다.” 는 뜻이다. 고문자(古文字) 연구 학자 강은(康殷)은 윤(尹) 자(字)는 글자의 모양이 손으로 침을 쥐고있는 형상이며 침으로 사람의 질병을 치료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윤(尹)은 관명이었지만 사실상 의료 치료의 원의(原義)로 부터 파생된 뜻이다. 그래서 이윤(伊尹)이란? 이수(伊水)에서 태어난 의사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윤(伊尹)은 ”이수(伊水)의 무사(巫師)이다.” 는 뜻이다. 한서-예문지에 보면 이윤(伊尹)의 이름을 빌려 저작된 도가의 저서와 소설과 병가의 서적 들이 있다. 후세 의가에서 경방십일가 274 권(卷) 중 탕액경법 32 권(卷)은 이윤(伊尹)이 저작한 것이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 옥함산방집 중 유실된 이윤서 일 권(卷)과 마왕퇴한묘(马王堆汉墓)에서 출토된 백서(帛书) 중에 이윤편이 있다. 상나라 때 후세에게 남겨 준 가장 큰 유산은 은허갑골문자(殷墟甲骨文字)이다. 갑골문에 보면 무사(巫師)들이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였고 점복길흉(占卜吉凶)을 예언해 주었다. 후세들이 이윤(伊尹)을 제사 지낸 내용이 갑골문 속에 기록되어 있다. 갑골문 중 이윤(伊尹), 이 (伊), 이석(伊奭), 황이(黄尹) 등은 모두 이윤을 가리킨다. 갑골문에 기재되어 있는 질병의 수는 12 종류이다. 예를 들면 안질과 구강 질병과 다리의 질병과 몸의 질병과 소아과 질병과 정신병과 충치와 산부병과 풍습병 등이다. 이상은 이윤(伊尹)과 의약의 관계를 퍼온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글쓴이 : 정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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