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미산재에 留하고 지리에 들다(140704~06)

도솔산인 2014. 7. 6. 18:41

 

미산재에 留하고 지리에 들다(140704~06)

 

 

▣ 일   시 : 2014년 07월 04일 ~ 06일

▣ 코   스 : 미산재 - 윗새재 - 치밭대피소 -  써리봉 -  중봉 - 상봉 - 장터목산장 - 중산리

▣ 인   원 : 3명(미산선생님, 김선권님)

 

 

 

♥ 나의 첫사랑 이야기

  

만남 중에 가장 설레는 것은 첫사랑과의 만남이다.

 

대전고등학교를 떨어져 후기인 서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고 1학년 때의 일이다.

 

미산재

 

 

무제치기폭포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모든 선생님들의 표적이 되었고

문제를 일으켜 교감선생님께 파리채로 뺨을 맞는 일까지 있었으니

 참담한 학교 생활이 아닌가? 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자,

 

붉은덕다리버섯

 

당시 대전여고에 다니는 누나가 조퇴를 하고

학교로 찾아왔고 담임 학생과장 교감선생님이 고개를 설레설레하시니...

 

교장선생님을 뵙고 '제 동생이 잘못을 했으면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학교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하셨는가요? 그렇다면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이겠습니다.'라고 하여

교장선생님을 감동시켰고 일류 여고에 다니는 누나의 덕을 보았다. 

 

아무튼 그일로  한동안  '똑똑한 누나와 못난 동생 이야기'가 선생님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그래도 마음을 잡지 못하자 방학 때 참한 여학생을 데리고 와서

넌즈시 '어떠냐?'고 물었지만 나는 속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누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 만나보라.'고 권하였고

그 뒤에도 동생을 위해 여러 번 집에 데리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방황하는 동생을 위해 미인계를 썼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실로 궁여지책의 발상이 아닌가?

 

 

대학 진학 후 약속대로 교대에 다니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고 답장이 왔다.

그후 몇 번 만났지만 다른 지방에서 그녀는 자취를 하였고 나는 하숙을 하였으니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었고 방학이 아니고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방학이 되어 전화가 왔고 어머니는 아시는 듯...

은근히 며느리감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녀는 늘 나의 장발과 복장에 대해 불만스러워 했고

만나면 충고의 말들이 나에겐 무겁고 부담이 되었다.

  

그 후 연락이 두절되었고...

당시 교대가 2년제였으니 초등에 근무한다고 생각했을 뿐...

 

 

♥ TV는 사랑을 싣고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이 전국을 강타할 즈음이다.

 

1996년 2월 29일

설악에 갔다가 한계령에서 차가 한 바퀴 돌아 가드레일에 걸려 죽음을 모면하고

차량을 맡기고 오색으로 올라 대청봉 천불동으로 하산하여 설악에서 돌아온 날,

 

 

중봉샘

 

 

 

그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고

나는 한 걸음에 서울로 달려갔다.

 

 

어색하지만 지난 이야기들을 했고

 

 

유암폭포

 

찾게 된 경위며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며

나와의 연락이 끊어진 이후 남편을 만났고

 신상 문제까지 속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 2014년 7월 4일 오후

 

그로부터 또 18년이 지난 후 2014년 7월3일

카톡에 올라온 사진 아직도 아름다운 그녀!

 

나는 <미산>님과 함께 지리에 들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산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