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감상 072]어느 두메산골에서 하룻밤
農家養牛堗 : 소를 키우는 농가의 아궁이
木落已可愛 : 그 옆 잎 진 나무도 사랑스럽네
主人留我宿 : 주인은 자고 가라 만류하며
囑婦時向內 : 수시로 안을 향해 아내를 재촉하네
燈前送大梨 : 등불 아래 큰 배를 보내왔는데
一擘淸火肺 : 한 번 갈라 먹으니 속이 다 시원하구나
俄恠盤中珍 : 이윽고 반상에 오른 진미 놀라워라
捕魚仍摘菜 : 물고기를 잡고 나물을 뜯어왔네
自從峽中行 : 산골 마을 여행한 이래
往往看眞態 : 이따금 삶의 참모습 보았지
鞍馬一宵穩 : 하룻밤 잘 쉬고 말에 오르니
邂逅情可佩 : 뜻밖의 인정 마음에 간직하리라
拂曙還相辭 : 새벽녘 다시 서로 작별하자니
依依嶺月在 : 고개 위의 달 희미하게 떠 있네
-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창도역(昌道驛)」
『사천시초(槎川詩抄)』
요즘처럼 볕이 좋은 가을에 차를 몰고 시골 국도를 지나가 보면 우리 들녘, 우리 산천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또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며 꼬불꼬불한 길들이 퍽 정겹게 느껴진다. 시원하게 갠 하늘과 환하게 내리쬐는 햇볕, 오묘한 색감의 단풍과 누릇누릇한 농작물 등, 절로 가슴에 담고 싶은 풍경이고 정취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그림을 보면 이런 한국적인 풍광과 정감을 격조 있게 표현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의 오랜 예술적 동반자가 바로 사천 이병연이다. 겸재의 그림을 진경산수화라고 한다면 사천(槎川)의 시는 진경시라 할 만하다. 그의 시는 경치를 읊은 영물시가 많아 직접 가 본 체험이 있어야 좋을 듯한데, 겸재의 그림과 함께 감상하면 그 묘미를 다소나마 느낄 수 있다.
사천은 40세 무렵에 김화 현감(金化縣監)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이속(李涑)과 친구인 정선, 스승 김창흡(金昌翕)은 말할 것도 없고 이하곤(李夏坤), 권섭(權燮) 등 주변의 문인들이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신세를 많이 진 것 같다. 이 시는 그 무렵에 지어진 시로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에 떠난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의 시는 이처럼 일상적이기도 하다. 『사천시초』에 발문을 쓴 홍낙순(洪樂純)의 말로는 사천이 지은 시가 1만 3천여 수나 되어 다작으로 이름난 남송 시인 육방옹(陸放翁)에 견줄 만하며 당시 부녀자들과 아이들도 사천의 이름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천시초』에 수습된 것은 500여 수에 불과하다.
산골 인심을 체험해 본 사람에게 이 시는 각별히 다가올 것 같다. 소죽을 끓이는 부엌과 마당귀에 선 나무는 농가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경물이다. 손님을 맞아 황급히 대접하려는 주인과 없는 살림에 정성을 다한 밥상, 그리고 더 이상 신세 지는 것을 면하려고 새벽같이 떠나는 길손, 행간에 녹아 있는 이런 문화적 체험들이 지금은 생소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다반사로 볼 수 있는 풍정이었다. 시에서 ‘삶의 참모습[眞態]’이라는 말로 표현해 놓았듯이 이런 산골 인심이 소중한 그 무엇으로 시인의 가슴에 와 박힌 것임이 틀림없다.
사천은 5살 아래인 겸재와 일생에 걸친 예술적 동반자 관계였다. 겸재와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기도 하였고 서울 주변의 경관을 함께 그림과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지금 간송미술관에 전해지는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은 일제강점기에 하마터면 친일파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하였다. 「해악전신첩」에 실린 시는 같은 소재를 그림과 시로 각각 그리고 쓴 다음 합첩해 놓은 것이다. 이는 먼저 그림을 그려 놓고 거기에 알맞은 시를 쓰는 제화시(題畵詩)나 예전의 좋은 시 작품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보(畵譜), 또 시정(詩情)을 그림으로 재해석한 시의도(詩意圖)와는 다르다. 둘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융합된 독특한 것이라 할 만하다. 이 무렵에 사천이 겸재에게 준 시가 있다.
蒼蒼筆力入關東 : 기운찬 필력으로 관동으로 왔는데
雲水微茫百紙空 : 구름과 물 아득하여라 흰 종이는 비어 있네
醉墨不收騎馬去 : 취한 필력 발휘하지 못하고 말 타고 가지만
海山眞本在胷中 : 바다와 산의 참모습 흉중에 남아 있으리
-「정선에게 주다[贈元伯]」
이런 시를 보면 겸재가 우리 산천의 진경을 그리되 단순한 외면의 사생이 아니라 그 물상을 본 자신의 감흥과 어떤 심미적 정서를 담으려 한 것을 엿볼 수 있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은 겸재가 양천 현령(陽川縣令)으로 재직할 때, 한강 주변의 경승을 그려 사천에게 보내 주면 사천이 그 그림을 보고 시를 쓴 것이다. 서울 주변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첩은 그림과 시가 어울려 풍부한 감흥을 일으키게 한다. 사천의 시에도 겸재만큼이나 우리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과 우정이 담겨 있다.
前人喚船去 : 앞사람 배를 불러 가고
後客喚舟旋 : 뒷사람 배를 돌리라 하네
可笑楊花渡 : 우습구나, 양화 나루에서
浮生來往還 : 뜬구름 인생이 오고 가는 것이
-「양화 나루에서 배를 부르다[楊花喚渡]」
春晩河豚羹 : 늦봄에는 복엇국
夏初葦魚膾 : 초여름에는 웅어회
桃花作漲來 : 복사꽃 필 무렵 물 불어나니
網逸杏湖外 : 저편 행호에서 귀한 고기 잡는구나
-「행호에서 고기잡이를 구경하다[杏湖觀漁]」
33폭이나 되는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작품은 한강 주변의 경승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겸재 자신의 모습이나 사는 곳을 그린 「독서 여가(讀書餘暇)」와 「인곡유거(仁谷幽居)」 같은 작품도 있고 두 사람이 소나무 아래서 시와 그림을 바꿔보자고 약속하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같은 작품도 있어 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겸재는 이 그림에 화제를 써넣는 대신 이병연의 시 앞 두 구를 적어 넣고 ‘천금물전(千金勿傳 : 천금을 준다 해도 남의 손에 넘기지 마라.)’ 4글자가 새겨진 큼지막한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찍어 놓았다.
我詩君畫換相看 : 나의 시와 그대 그림 서로 바꿔 보니
輕重何言論價間 :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는가
詩出肝腸畫揮手 :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그리니
不知誰易更誰難 : 무엇이 쉽고 무엇이 어려운지 모르겠구려
심로숭이 엮은 『사천시선비(槎川詩選批)』에도 이들의 우정을 나타내는 시가 있다.
爾我合爲王輞川 : 나와 그대가 합해야 왕 망천이 되는데
畫飛詩墜兩翩翩 : 그림 날고 시 떨어지니 둘이 다 퍼덕이네
歸驢已遠猶堪望 : 돌아가는 나귀 멀어져도 아직은 보이는데
怊悵江西落照天 : 노을이 지는 강서를 슬프게 바라보네
-「정선과 이별하며 주다(贈別鄭元伯)」
당나라 문인 왕유는 장안의 남쪽 종남산에 망천(輞川)이라는 집을 짓고 살아 왕 망천이라 불렸는데, 시에 화의(畵意)가 있고 그림에 시정(詩情)이 담겨 있어서, 소동파로부터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 畫中有詩]’라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다. 사천은 시와 문인화에 능했던 왕유를 끌어와 자신과 겸재가 상보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말로 헤어지기 아쉬운 우정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연구자들이 말한 바로는 「인왕재색도」는 사천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겸재의 간절한 우정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사천과 겸재의 스승이었던 삼연 김창흡은 유람을 좋아한 사람답게 호남으로 유람을 떠나는 어떤 벗에게 “시는 명산과 대천에 있건만 아무도 찾지 않아 풍광만 남아 있네.[詩在名山與大川, 無人搜抉只風煙.]”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아름다움을 예술 작품으로 다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 잘 담아 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바람도 좋고 햇볕도 좋은 이 가을에 옛 시인이나 화가들의 마음을 스승 삼아 우리 산하를 둘러본다면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올 듯하다.
글쓴이 : 김종태(金鍾泰) / hanabone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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