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정보

소년대는 하봉이다.(131225)

도솔산인 2015. 9. 22. 17:06

 

 

소년대는 하봉이다.(131225)[지리다방에 올렸던 글]

 

 

지리동부의 지명은 자료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니 많이 혼란스럽다.

소년대는 어디일까? 1618봉이 말봉인가? 두류봉과 영룡봉은 어디일까?

 

점필재의 유두류록과 어우당의 유두류산록 내용으로 미루어 하봉은 소년대다.

 

 

김종직[金宗直]선생의 유두류록(1472년 8월 15일)

 

 여기에서(청이당) 영랑재까지 길이 지극히 위태롭게 매달려 바로 [봉선의기]에서와 같이 이른바 뒷사람은 앞 사람의 발밑만 보이고 앞 사람은 뒷사람의 이마만 보면서 나무뿌리를 더위잡고서야 오르내릴 수가 있었다. 해가 이미 오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재(영랑재)에 올라갔다. 함양(咸陽)에서 바라보면 이 봉우리가 가장 높게 보이니, 여기에 이르면 다시 천왕봉(天王峯)이 우러러 보인다. 영랑은 신라(新羅) 때 화랑(花郞)의 우두머리였는데,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수(山水)에서 노닐다가 일찍이 이 봉우리(영랑재)에 올랐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소년대(少年臺)는 봉우리(영랑재) 곁에 있어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었는데, 이른바 소년이란 아마 영랑의 무리였을 것이다.[출처:조선시대 유산기 펌]

 

지리동부 심설산행(120211~13)

 

 

 

영랑재&세석(121001~03)

 

 

 

두견새 슬피우는 지리동부(130601~2)

 

김종직선생은 영랑재 유몽인선생은 영랑대 양대박장군은 영랑참이라고 함.

점필재는 영랑재를 분명 다시 봉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영랑재(120211~13)

 

영랑臺 영랑站 영랑峰도 무방하나 점필재의 기록에 따라 영랑대는 영랑재다.

岾(재)는 國字(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로 산이나 사찰 이름에 간혹 쓰였다.

 

 

하봉 옛길 초입의 1618봉 안부를 '영랑재'라고 보는 견해가 혼동을 자초했다.

영랑재 곁에 소년대가 있다면 소년대는 1618봉일터 천왕봉이 보이지 않는다.

 

  

영신암지과 영신대처럼 영랑대와 영랑재는 하나다.

 

 

♣ 유몽인[柳夢寅]선생의 遊頭流山錄 [1611년(광해3) 4월 4일]

 

 새벽이 다가오자 길을 나서서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도착했다. 수풀을 뚫고 너덜겅을 거쳐 영랑대(永郞臺)에 이르렀다. 허리를 구부려 그늘진 골짜기를 바라보니 어두침침했다. 정신이 몽롱하고 눈앞이 어지러워 나무를 붙잡고 기댔다. 깜짝 놀란 마음을 달랠 수 없어 다시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랑(永郞)은 신라 시대 화랑의 우두머리였는데, 낭도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온 세상을 마음껏 유람했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과 강에 영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중략>

  그곳(영랑대)에서 앞으로 나아가 소년대(少年臺)에 올랐다. 고개를 들어 천왕봉을 바라보니 구름 가운데 높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잡목과 잡초는 찾아볼 수 없고 단지 푸른 잣나무만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서리와 눈보라와 거센 비바람에 시달리느라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말라 죽은 고사목이 열 가운데 두셋이나 되었다. 멀리서 보면 반백의 노인처럼 보이는데 거의 뽑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년'이라고 한 것은 혹 신라의 화랑인 영랑의 무리를 일컫는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천왕봉은 장로(長老)이고 이 봉우리는 천왕봉을 받들어 뜻을 잇는 소년과 같다고 해서 '소년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천의 산과 수만의 골짜기가 주름이 접힌 듯 펼쳐져 있었다. 이곳도 이러한데 하물며 최고 봉우리에 오르면 어떠하겠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지리산 유람기(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2007.6.1, 포럼)

 

 

 

 

하봉(130517~19)

 

 

유몽인선생의 두류유산록에서 발췌한 '소년대'에 대한 내용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시는 분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길 뿐이다.

 

                                        [131225 지리99 다방에 올린 글]

 

 

♣ 소년대는 하봉이다(150922)

 

天王峰을 上峰이라고도 하는데 上은 임금상으로 王과  동의어다.

어우당은 천왕봉을 長老 하봉을 천왕봉을 받들고 있다고 해서 少年臺라고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上봉의 上은 天王, 봉의는 臣下, 천왕봉은 長老, 하봉은 少年이니

하봉은 바로 소년대다.

 

 

아직도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겠지만

少年臺를 찾아서(150822~23)에는 점필재의 유두류록을 근거했고,

소년대는 하봉이다(131225)에는 어우당의 유두류산록에 근거했다.

 

두 사람이 같은 이름의 같은 곳을 기록했을 수도 있고,

같은 이름의 다른 곳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소년대는 하봉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