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을 좇는 삶
내가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선한지 악한지를 세상의 판단에 넘겨버리고 돌보지 않는 것은 참으로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身之是非善惡 欲委以與世而不恤 非惑之甚與
以 : ~에, 與世 : 세상의 여론, 恤 : 돌볼휼
- 송문흠(宋文欽, 1710〜1752)
「반속(反俗)」
『한정당집(閒靜堂集)』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듯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세속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도움을 받거나 주기도 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은 우리 삶이 영위되고 이루어지는 터전이다. 그러나 세속은 ‘나’와 긴장 관계에 있다. 세속의 많은 사람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살아갈 때는 평범하다는 위대한 인정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영혼 없다’는 무시를 받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세속의 많은 사람의 삶에 반(反)하는 삶을 택할 때는 고고하다는 칭송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뭐가 그리 잘나서’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한다. 세속에 살고 있지만 세속과 동화되는 것도 어렵고 거리를 두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무난한 타협점을 찾는다. 남들 하지 않는 것 하지 않고 남들 다 하는 것 따라 하면서 겉으로는 남들과 어울리되 안으로 마음에서만은 신념을 버리지 말자고.
그런데 한정당(閒靜堂)의 위 말은 이러한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에 ‘아니다’를 외친다. 그의 비판과 비유를 요약해 옮기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추우면 옷을 입고자 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자 한다. 세상 사람이 추워하는지 배고파하는지에 기대지 않고 그렇게 한다. 이는 추움과 배고픔이 나의 삶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남들 사는 대로 따라 하느냐 그에 반하여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의 삶을 얼마나 절실하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이다.
마음에서만 신념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진정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천금 나가는 보물이 있다면 상자에 담아 자물쇠를 채워 잘 보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저잣거리에 버리고서 남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상자만을 버렸을 뿐이다. 상자 속의 보물은 내가 꼭 간직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 보물을 잃지 않는 것이겠는가. 세속에 자신을 맡겨두고서 마음만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의 모습이 그저 지느러미 한 번 까딱하고 꼬리 한 번 흔드는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한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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