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평생의 지극한 즐거움[펌]

도솔산인 2012. 3. 19. 14:39

평생의 지극한 즐거움

 

눈앞에 미운 사람이 없고 마음에 불평한 일이 없는 것, 이것이 평생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眼前無不好人, 肚裏無不平事, 是爲平生至樂.

안전무불호인  두리무불평사  시위평생지락

 

 

- 성대중 (成大中 1732~1809)

<질언(質言) >

《청성잡기(靑城雜記)》

 

 

성대중이 남긴 청성잡기에 수록된 질언의 한 대목이다. 질언은 오늘날의 격언과 비슷한 말로 저자의 인생 체험과 사유가 녹아 있는 142 칙(則)의 질언이 이 <질언>이라는 제하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이 다분히 통속적이다.

 

사람이 평소 잘 나갈 때는 모르지만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실연을 당하거나 하게 되면 통속적인 글이나 노래 등이 가슴에 깊이 와 닿는 경우가 있다. 통속도 나름대로 깊이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박인환 시인이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이라고 읊은 것은, 젊은 감수성으로 쓴 시이긴 하지만 상당히 통찰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 시가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또 조병화 시인이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라고 노래한 것도 다소 역설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인생의 한 단면을 잘 포착한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근세 문인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노신(魯迅)을 떠올리기 쉽다. 그의 글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나 문학을 통한 사회 변혁 등에 그 지향점을 두고 있어 우리나라에도 70~80년대에 시대 상황과 맞물려 특히 풍미하였다. 그와 그의 동시대에 활동한 저명한 문인 중에 임어당(林語堂)이 있는데, 필자는 예전에 그의 글을 읽어보고 탄복하였다. 사실 필자가 외롭거나 인생이 힘들 때 위안을 받는 쪽은 임어당이었던 것이다. 그는 또 명ㆍ청대의 소품 문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장조(張潮)의 <유몽영(幽夢影)> 같은 작품을 아주 애호하였다. 이 작품은 국내에도 최근 번역되었는데, 생활 속의 사소한 것들에서 깊은 삶의 이치를 길어 올려 생활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학의 경향은 명말 청초에 두드러졌지만 사실 위진 시대의 《세설신어(世說新語)》나 《채근담(菜根談)》등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연원이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닿고 있어, 유구한 동양 문학의 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잡기나 잡록 같은 데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18세기에 오면 소품(小品)이라는 새로운 문풍(文風)을 타고 짧은 형식에 인생의 체험이나 지혜 같은 걸 녹여낸 글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성대중의 <질언 >은 그 간결성이 두드러진 면모를 보인다.

 

성대중이 남긴 《청성잡기》는 췌언(揣言), 질언(質言), 성언(醒言), 이 3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 질언이 바로 오늘날의 아포리즘 문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양의 니체 같은 이들이 다소 어둠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유몽영이나 청성잡기의 질언은 밝음을 지향하고 있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질언>의 내용을 한 두 마디로 포괄한다면 인과응보와 명철보신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지만,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이 음미해 볼 만할뿐더러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유의 글들은 사람들과 토론하며 읽거나 번잡한 곳에서 의무감으로 읽기보다는, 어느 한가한날 조용히 야외에 나가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면서, 슬슬 글을 음미하며 읽는다면 더욱 그윽하지 않을까? 이런 것도 독서인이 살아가며 즐길만한 작은 재미 아니겠는가.

 

글쓴이 :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