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夢魂<李玉峰>

도솔산인 2007. 10. 9. 15:06

 

 70년대 후반 가을 어느날 책속에서 만났던 여인 玉峰 李淑媛(이숙원)을 다시 만나다.

 

 

夢   魂

 

                                    玉 峰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門前石路半成沙

 

 

 

 

* (꿈길)꿈속에 넋이라도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신지요?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만일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그대 문 앞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테지요.

 

 

 

 

 

* 이해와 감상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성인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사무치는 연모의 정을 그려내고 있다. 승구(承句)에서는 그리움을 달빛에 비추어 하소연하였고, 결구(結句)에서는 꿈속의 발자취가 현실로 옮겨진다면 돌길이 반쯤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을 만나고 싶은 애타는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전구(轉句)에서의 시상 변환이 특히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근한 물음을 통하여 자신의 그리움을 드러낸 표현이 돋보인다.

 

 

 

* 사랑에 꺾인 애달픈 시심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승지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원을 아느냐"는 물음에 조희일이 부친이라 대답하니, 원로대신은 서가에서 <이옥봉 시집>이라 쓰인 책 한 권을 꺼내보였다. 조희일은 깜짝 놀랐다. 이옥봉은 아버지 조원의 소실로 생사를 모른 지 40여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옥봉의 시집이 어떻게 해서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게 되었는지 조희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40년 전쯤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주검이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시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벗겨 냈더니 바깥쪽 종이는 백지였으나 안쪽의 종이에는 빽빽이 시가 적혀 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 읽어 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들이라 자신이 거둬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온몸을 시로 감고 죽은 여인 이옥봉. 이옥봉은 조선 명종 때 충청도에서 왕족의 후예 이봉지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 를 보인 옥봉은 신분의 굴레로 첩살이 밖에 못함을 알게 되자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옥봉은 장안의 내로라 하는 명사들과 어울리며 단종 복위운동에 뛰어들었고, 곧 시귀나 짓는 선비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옥봉은 조원이란 선비를 사랑하여 첩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첩살이가 싫어 결혼을 거부했던 그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약해진 모양이다. 한데, 조 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앞으로는 절대 시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했다. 여염의 여인이 시를 짓는 것은 지아비의 얼굴을 깎아내리는 일이 라면서. 옥봉은 맹세했다. 자신의 시는 외로움과 허망함의 발로였으니 지아비를 얻으면 시를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목사에게 손을 좀 써달라 했다.

 

 사정을 들어본즉 아전들의 토색질이 분명했다. 옥봉은 파주목사에게 시 한수를 써 보냈고, 산지기는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내친 것이다.

 

 뚝섬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내며 옥봉은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조원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10년 가까이 시혼을 억눌러오다가 산지기를 위해 한수 지어준 일로 쫓겨나다니. 옥봉으로서는 야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으리라. 옥봉은 애통한 마음을 담아 시를 읊고 또 읊었다. 더 이상 참을 까닭도 없었으니까.

 

 

平生離恨成身病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      이불 속 눈물이야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      밤낮을 흘러도 그 뉘가 알아주나

 

 

 조원을 단념한 옥봉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중국으로 가 마음껏 시심을 펴보려 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의 시로 몸을 감고 낯선 바다에 뛰어들었나 보다.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 규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여성은 천시하거나 사회적 보호밖에 두었던 조선시대의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셈이다. 사랑을 위해 시를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은 결국 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침묵으로 웅변하면서....

 

 (출처 : 한겨레 21. 1997. 7. 17 / 박은봉/ 역사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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