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작업실

영신대에 숨어있는 마하가섭 이야기(201028)

도솔산인 2020. 10. 28. 21:46

영신대에 숨어있는 마하가섭 이야기(201028)

 

 

선인들의 유람록을 읽다보면 빈발암, 가섭전, 영신암이 등장한다. 빈발(賓鉢)은 가섭(迦葉)이 출가하기 전의 속명 핏발라(Pipala), 가섭(迦葉)은 출가 후의 법명 가사파(kā-śyapa)를 음차하여 한역한 것이다. 영신(靈神)은 가섭이 열반에 들기 위해 선정(禪定)에 들어간 후의 이름이다. 빈발(賓鉢)과 가섭(迦葉), 영신(靈神)은 마하가섭(Mahākā-śyapa)의 출생과 출가, 적멸(寂滅)의 시점으로 구분한 것으로 이해한다. 가섭의 출생부터 적멸까지의 이야기가 세석평전과 영신대에 담겨있다. 1487년 추강 남효온은 지리산일과에서 촛대봉은 빈발봉으로, 영신봉은 계족봉으로, 영신대에 영신암과 빈발암, 가섭전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해당 안평대군이 영신암 법당에 있는 몽산화상이 그린 가섭도 족자에 쓴 찬(贊)을 읽어보면 이해가 쉽다. 요약하여 말하면 마하가섭존자가 설의 계산(계족봉) 아래 영신대 바위 속에 깃들어 적멸의 경지(선정)에 들어가 미륵불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蒙山畫幀迦葉圖贊 (몽산화상이 그린 가섭도의 비해당 贊)

 

                                匪懈堂 李瑢(안평대군)

 

頭陁第一。是爲抖擻。: 마하가사파존자께서는 두타 수행인 두수를 바르게 실천하시어

外已遠塵。內已離垢。: 밖으로 이미 번뇌를 떨치시고, 안으로 離垢의 경지에 오르셨네

得道居先。入滅於後。: 앞서 道(아라한과)를 깨달으시고 뒤에 적멸의 경지에 드셨으니

雪衣雞山。千秋不朽。: 눈 덮인 계족산에 깃들어 천추에 사라지지 않고 길이 전하리라

 

* 몽산 : 원나라 고승 몽산화상. * 贊(讚) : 다른 사람의 書畵를 기리는 글. * 匪懈堂 : 안평대군의 호, 三絶 ; 시서화. * 雞山 : 계족산 영신봉을 가리킴.

 

 

인도의 동북부 비하르(Bihar)주에 있는 꿋꾸따빠다산(屈屈吒播陁山:Kukkuṭapāda-giri)이 있다. '꿋꾸따'는 '꼬꼬댁'하는 닭울음 소리의 의성어이고, 산스크리스트어로 '빠따(pāda)'는 발(足), 기리(giri)는 산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산의 모양이 닭 발의 모양을 닮았다고 한다. 석가섭은 '마하가섭존자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를 가지고 미래에 오실 미륵불께 전하기 위해 꿋꾸따빠다산(계족산)의 바위 동굴에서 선정(禪定)에 들어갔다.'라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계족산으로 한역(漢譯)되었고, 인도에 있는 계족산을 지리산 영신대에 옮겨다 놓은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마하가섭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를 미륵불에게 전하기 위해, 영신대 바위 속에서 적멸의 경지(선정)에 들어 미래에 도래할 미륵불을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영신대는 미륵신앙의 성지인 것이다.

 

2017년 석가섭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최석기 교수님의 '황준량의 지리산 기행시에 대하여(遊頭流山紀行篇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이다.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은 1545년 4월 지리산을 유람하고 장편고시(176韻, 352句, 2516字)를 남기는데 석가섭을 이렇게 노래한다. '천 길의 가섭상은 햇빛에 그림자 드리웠는데/흉악한 섬 오랑캐의 칼날에 상처를 입었구나.' 나는 황준량의 시를 읽고 2017년 9월 3일 영신대에서 가섭의 형상을 보았다. 햇빛에 드리운 바위가 가섭이 깃든 자연불(가섭상)로 보인 것이다. 이후에 여러 차례 영신대를 찾았으나 가섭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2020년 10월 25일 아침 영신대 석문 기도터를 지나 암봉 위에서 영신대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마음의 문을 열면 석가섭의 형상을 친견(親見)할 수 있다. 이 위치는 점필재가 창불대에서 영신대 석문으로 내려오는 지름길의 암봉에 있다. 창불대에서 영신암으로 내려오며 석가섭을 보고 석문을 통해 영신대로 들어온 것이다.

 

김종직의 영신암 시 1연 '전괄(창불대)과 거상(나바론계곡)을 둘러보고 돌아오니/노선사의 방장(영신암)은 석문이 열려있네.'

 

황준량(黃俊良, 1517~1563):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 사온서주부 영손(永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효동(孝童)이고, 아버지는 치()이며, 어머니는 교수 황한필(黃漢弼)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석가섭 I(170923)
석가섭 II(201025)
석가섭 III(사진 산영 曺박사님)
석가섭 Ⅳ
이곳에서는 좌고대도 보인다.
천왕봉 뒤 칠선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미륵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