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개벽지 지리산보의 망해정과 제석당 그리고 마암당
[개벽 제 34호 지리산보(1923년 4월 1일)]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人의 편리를 圖키 위하야 山上에 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은 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은 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皆中峯) [1937년 5월18일<김학수>의 유방장산 기행] 바위 사이에는 가옥 하나가 있는데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진주(晉州)의 강위수(姜渭秀)가 세운 것. |
강위수는 천왕봉에 망해정을 짓고, 박노익과 영원사승 일동은 (제석봉에) 제석당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와 벽송사승 일동은 (중봉에) 마암당을 건축하였는데, 제석당과 마암당이 있는 두 곳 (峰 이름)이 다 중봉이다. 감수재 박여량선생 [두류산일록] 이후 1923년에도 제석봉도 중봉이라고 하였고, 지금 중봉을 중봉이라고 이라고 하였다[同名異峰]. 현재 지명으로 다시 풀이하면 제석당은 제석봉에 지었으며, 마암당은 중봉에 지었는데, 당시(1610년~1923년)의 이름은 두 곳 모두 중봉이다.
[지리산행기]중경팀제2차 정기산행-뱀사골,와운옛길 <솔바우> 작성일 : 17-11-01 19:08
꼭대 17-11-05 08:00
10여전 까지만 해도 북두재 소나무가 살아 있었는데 병충해를 입었던지
장생을 상징하는 소나무도 세상의 이치를 피해갈 수 없군요.
[지리99]도 가끔 병충해가 들끓기도 합니다만 산꾼들의 건강한 정신으로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에 힘입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단풍이 아직 볼만하여 함께 하신 식구들의 마음도 예쁘게 물들어 보기 좋습니다.
[지리다방] 마암 (馬巖)에 대하여 <가객> 작성일 : 17-11-09 09:42
가객 17-11-10 07:26
고전의 고증에 있어서 작가의 관념이든 등장하는 지명이든 어떤 대목에서든지 사료중심의 객관적인 고증이 덕목이라고 봅니다. 행려라도 주관적인 견해가 첨가되는 순간 졸작의 수준을 면치 못하는 경우 가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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