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곧음과 굽힘 - 이곡(李穀, 1298~1351)

도솔산인 2017. 11. 16. 15:22

 

곧음과 굽힘 - 이곡(李穀, 1298~1351)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夫事物之理, 一直一曲, 不可以執一論也.


 

- 이곡(李穀, 1298~1351), 가정집(稼亭集)7 경보설(敬父說)

 


[해설]

올곧다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마음이나 정신 상태 따위가 바르고 곧다.’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곧은 사람하면 으레 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곡 선생의 생각은 좀 다르신 모양입니다.

 

이양직(李養直)이라는 사람에게 그 벗이 불곡(不曲)이라고 자를 지어 주었답니다. ‘양직(養直)’곧음을 기르다, ‘불곡(不曲)’굽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름과 자가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에 대해서 불곡(不曲)이라고 말한다면, 논리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의 의미가 어찌 이 정도에서 그치겠는가.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지처럼 거대한 것 역시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라고 한 것이다. 굽히기만 하고 펴지 않는다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요, 펴기만 하고 굽히지 않는다면 움직임을 지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곧게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을 모른다면 그 곧음을 기를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직일곡(一直一曲)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直而曰不曲理則然矣直之爲義豈止於是乎夫事物之理一直一曲不可以執一論也天地之大也或動或靜故孔子曰尺蠖之屈以求伸也盖屈而不伸則無以持其靜伸而不屈則無以存其動是以直而不曲則不能養其直此一直一曲之謂也]

 

그래서 순()임금 같은 성인도 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들었답니다. 더 큰 대의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지요.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아들이 고발하는 것이 결코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선생의 말씀입니다.

 

천지의 도가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면서 조금도 차질이 없는 것은 오직 성() 때문이다. 사물의 이치가 한 번 굽혀지고 한 번 펴지면서 조금도 잘못이 없게 되는 것은 오직 경() 때문이다. 성과 경이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똑같은 것이다. 주역(周易)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대개 곧음이란 당연한 도리요, 공경이란 곧음을 기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를 미루어 자기의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적용한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간에 천리(天理) 아닌 것이 있겠는가.

 

[天地之道或動或靜而不差者誠而已矣事物之理一曲一直而不過者敬而已矣誠敬之名雖殊而其理則一易曰敬以直內盖直者理之當然而敬者養直之具也以此推之於明德新民之用則何適而非天理耶]

 

어떤 것을 택하든 성()과 경()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굽히는 것도 굽히는 게 아닐 수 있고 곧은 것도 곧은 게 아닐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원칙은 원칙이되 사물과 사람에게 가장 마땅한 것을 찾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양직이란 분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의 자를 불곡(不曲)’에서 '경보(敬父)'로 고쳤다고 합니다.


글쓴이조경구(趙慶九)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