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시제와 성북동 시제(160410)
철종 12년 신유년(1861년) 5대조 참봉 象儀公(初諱泰孝)은 자식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셋째 아들 止山 李起燦을 義興懸 羅湖洞의 月城人 楠西 朴春立선생의 문하에 입문시킨다.
이런 연유로 우리 집안이 靑松에서 義興으로 移居했다하여 '義興門中'이라고 稱한다.
象儀公 4형제 중 象儀公과 觀孝公은 의흥현으로 移居, 順孝公은 청송을 떠나지 않았다.
첫째 益孝公 후손은 해방 후 월북하였다고 하고 둘째 象儀公 후손은 대전,
셋째 觀孝公 후손은 대구, 靑松에는 넷째 順孝公 후손이 아직도 살고있다.
아무튼 6대조에서 9대조의 산소가 청송에 있으니 한식 다음주 일요일이면 묘제를 지낸다.
본래 가을에 묘제를 지냈으나 해가 짧고 거리가 멀어 한식에 祭를 지내는 것으로 바꾸었다.
우리 집안에서 祭需를 마련할만한 집이 없으니 3년마다 돌아오는 祭需 준비는 늘 내몫이다.
小麯酒, 三色實果, 黃太脯, 餠(引切餠)만 준비하니 흑염소에게 번거롭게 하는 일은 없었다.
아침 6시 30분 출발에 출발하여 오후 다섯시가 넘어서 돌아왔다.(당질 학성 종형 동규)
문중의 숙제는 하기 전에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가볍다.
돌아와서 사촌형제들과 어머니 모시고 저녁을 먹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아드렸다.
오고 가는 길에 복숭아꽃 오얏꽃 살구꽃 배꽃이 활짝 피었고 벚꽃도 만발하였더라.
추풍령
묘역 주변에 심은 소나무를 도리송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세 그루만 있다.
청송 읍내
묘제를 마치고 주왕산 국립공원의 청솔식당에서 산채한정식을 먹었다.
연소재 모과꽃 피었다.
'♣ 崇祖惇宗 > 청흥문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구 마산동 선영 省墓(170326) (0) | 2017.03.26 |
---|---|
2016금화벌초(160904) (0) | 2016.09.04 |
청송&성북동 묘제 제수 준비(160409) (0) | 2016.04.09 |
통장정리 및 조부 기일(160404) (0) | 2016.04.04 |
마산동 선영 성묘(160306) (0) | 201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