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정보

♣ 富春洞과 七里灘

도솔산인 2013. 1. 30. 13:55

 

♣ 富春洞과 七里灘[輿地圖書]

 

富春洞 在智異山靑巖里 州西九十里 有七里灘 有家禮巖 韓錄士惟漢 嘗讀家禮於巖上故名焉

 

부춘동은 지리산 청암리에 있다 (진양)고을 서쪽 구십리에 칠리탄七里灘(*)이 있고 가례암家禮巖이 있는데 한녹사 유한이 일찍이 바위 위에서 가례를 읽은 까닭으로 이름한 것이다.

 

(*)七里瀨 : 浙江省 桐廬縣 남쪽에 있는 여울. 七里灘, ≪後漢書, 逸民傳, 嚴光≫ 後人名其釣處爲嚴陵瀨 <李賢注> 七里瀨在東陽江下, 與嚴陵瀨相接, 有嚴山. 唐 白居易 ≪新小灘詩≫ 江南客見生鄕思, 道似嚴陵七里灘, ≪淸一統志≫七里瀨, 一名七里灘, 在桐廬縣嚴陵山西

 

‘칠리탄’ ‘칠리뢰’ ‘엄릉뢰’ 같은 말로 청암리 부춘동의 계곡 이름이 칠리탄입니다. 灘은 급류를 뜻합니다. 권력을 농단한 자(은거 원인 제공자)를 고려사에는 최충헌시대라고 하고 다른 곳에는 이자겸이라고 나와 있는데 ‘주자’보다 한유한이 앞선 인물은 아닙니다. <가객>선생님! <엉겅퀴>님! 이 깊은 계곡의 유래까지 꿰고 계시니 존경스럽습니다.  ^ ^

 

 

 

♣ 韓惟漢隱于智異山 한유한이 지리산에 은거하다[東國通監]

 

當時權姦擅國 視君如土梗 廢置在其手

당시 권력을 잡은 간신들이 나라를 제 마음대로 하여 임금을 보기를 토경(흙으로 만든 인형)같이하여 왕의 자리를 폐하고 두는 것이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

 

此正賢士高蹈遠引之時也 滿朝群臣 無一人能見幾而作(*) 惟漢獨能之 可不謂賢乎

이에 바르고 어진 선비는 은거하고 멀리 떠나는 때에 조정에 가득한 여러 신하들은 한 사람도 능히 기미를 보고 움직임이 없었으니 유한이 홀로 가능하였으니 어질다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見幾而作 : 기미를 보고 행동함(조짐이나 낌새를 살펴보고 적절한 시기에 행동함) * 能 : 잘하다.능하다

 

其視當時媚竈乞憐之徒 不啻若犬彘 況肯赴其微辟耶

당시 권신에게 아첨하고 남의 동정을 바라는 무리를 보면 개돼지만 못할 뿐이니, 하물며 그 보잘 것 없는 임금에게 즐기어 나아가겠는가?

 

媚竈 : 권신에게 아부하다.(竈 : 부엌신으로 권신을 비유함) 乞憐 : 남의 동정을 바라다. 不啻若 : ~만 못할 뿐이다.

 

其英風峻節 至今千載之下 聞者莫不景仰而歆慕云

그분의 뛰어난 풍격과 고상한 절조가 지금까지 천년 이래로 듣는 사람들이 우러러 흠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이르더라.

 

英風 : 뛰어난 기개, 늠름한 기개/훌륭한 명망. 높은 威望/고상한 풍격과 절조峻節 : 고상한 절조 景仰 : 덕을 사모하여 우러르다. 歆慕 : 欽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