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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허 위 선생의 의병활동으로 시작된 끈질긴 일경의 왕산일가에 대한 추격,
그 추적을 피해 만주 러시아로 피신한 후손들... 그들의 행방을 3년간 추적한 끝에
키르키즈스탄에서 찾아내었다.
왕산 허 위 후손인 허 블라디슬라브, 게오르기 씨 형제에게 한국 국적을 취득시켜주고
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필자가 희생해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컸다.
왜 구미시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아직까지도 필자가 굳이 해야 하는가?
前 구미시 김관용 시장님과의 TV 인터뷰에서 ‘허 위 선생 후손은 구미시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였다.
이번 준공식에 공로상을 받은 K씨한테도 구미시가 할 수 있는 제안을 제시하였다.
구미시에서 임대 아파트를 제공, 구미공단에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마련이 안 되면 구미시에서
운영하는 공원과 주자창에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K씨는 우선 급한 문제는 후손들 생활비로 그 들의 생계를 보태줄 목적으로 가칭
왕산 허 위 선생 후손 돕기”라 하며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그 운동은 사라져 버렸다.
필자는 5년동안 자비로 충당하며 본인 가정에 대해 소홀히 한 끝에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려움이 있어 후손들을 도울 수가 없게 되었다.
2008년 7월, 허 블라디슬라브 씨가 제2의 고향인 키르키즈스탄 떠나버리고, 9월 2일, 초췌한 얼굴의
허 게오르기 씨를 만났다. 일자리가 없어 러시아인들이 모이는 안산시 새벽시장에서 막 일이라도
하려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도 결국 키르키즈스탄으로 떠나 버렸다.
왕산 기념관 기공식에서 조차 왕산 기념 사업회 ‘노진환’ 회장은 참석치 않았고,
왕산 허 위 후손들을 돕겠다던 김관용 도지사님을 봤을 때, 필자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사진에 있는 생가 터 600여 평(당시 시가 12억)을 구미시에 기증을 한 허 위 선생 후손 허경성씨는
행사장에서 머리를 숙이며 기념관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산다는 왕산 허 위의 큰아들 허 학 씨의 무남독녀 허 로사 씨를
우즈베키스탄에서 찾아내어 마침 우즈베키스탄 방문 중인 한명숙 국무총리에게 소개를 하였다.
국무총리 초청으로 모국 방문을 하게 된 허 로사 씨.
구미시에서 힘깨나 쓰는 분들이 낮이나 밤이나 신나게 찾아오고 출국 전날 장관들이 만나자고 줄을 서고...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이런 추세를 바라보면서 왕산 기념관이 제대로 운영이 될 지 정말 걱정이 된다.
추신: 허 로사 씨(83세)
러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죽을 때만큼은 조국 땅에 뼈 한조각이라 묻히는 것이 소원이다’
라고 한다. 83년동안 살아온 우즈베키스탄에서 할아버지의 조국, 그리고 허 로사 씨의 조국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기 위해 2007년 법무부에 국적을 신청하였으나, 아버지 함자가 틀리다하여
접수조차 하지 못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갔었다.
이번 왕산기념관 준공식에는 어느 지원도 없이 자비로... 게다가 홀로 힘겹게 참관하였고,
법무부에 10월 7일 국적 신청하여 10월 14일 꿈에 그리던 국적을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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