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기제사 후 성묘(090929~30)
1943년 우리 가족은 일제의 핍박을 피해 가족 전체(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작은아버지)가 신탄진역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 용산에서 만주 봉천행 기차를 갈아타고 원산에서 내려 다시 평원선을 타고 함경남도 고원군 인흥역에서 산 속으로 숨어들어 개마고원 자락에서 토굴을 파고 칡을 캐먹으며 세해 동삼을 견디어 냈다 하니 그 참혹함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해방이 되었지만 그해 온가족이 장티프스에 걸려 사경을 헤메다 1945년 9월 17일(음 8월12일) 결국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자,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면 원거리 둔전골 산기슭에 산소를 임시로 모시고, 남은 가족들은 1946년 3월 38선을 넘어 월남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가신지 64년! 그분의 아들의 아들이 그 분이 돌아가신 나이에 제사를 모시고 다음날 종형님과 선영을 찾아 할머니의 虛墓에 성묘를 하고 할머니의 고단했던 짧은 생을 생각하였다.
先考께서는 통일을 기다리다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산소를 찾을 것을 유언하셨지만, 余는 결국 先考의 유언을 따르지 못하고 작은아버지 두 분과 상의 하여 2001년 윤 4월에 통일전망대에 가서 제를 지내고, 혼백을 모셔와 유골 대신 밤나무 위패와 지석을 할아버지 옆에 모시고 손자인 余가 고유문을 지어 제를 올렸다.
* 告由祭 祝文
辛巳年 閏四月 丙戌朔 十二日 己丑 孝孫 永揆는 顯祖妣孺人寶城吳氏 할머니 魂靈께 敢히 告하나이다. 남북분단으로 墓所를 찾지 못한지 어언 56年!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함이 하늘과 같이 끝이 없습니다. 顯祖妣孺人寶城吳氏 할머니 혼령이시여! 이제야 先塋에 幽宅을 定하여 비록 魂魄이라도 선영에 장사를 지내고자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높으신 할머니 魂靈이시여! 길이 魂魄을 편안하게 하소서! 부디 자손을 이롭게 하소서!
* 지석
辛
巳
年
閏
四
月
十
二
日
三
子
李
廷
弘 |
伏惟尊靈
永安利成 |
但侍魂魄
葬于於此 |
다만 혼백만을 이곳에 장사지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어른의 혼령이시여! 길이 魂魄을 편안하게 하소서! 부디 후손들을 이롭게 하소서!
신축년 윤사월 십이일 삼자 이정홍
가운데가 할머니의 유골이 없는 虛墓이다.
종형이 제초제(13,500*5=6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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