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周而不比/도솔잡기

燕巢齋 重修記

도솔산인 2008. 9. 4. 17:19

 

연소재 중수에 즈음하여...

 

 

 82년 대학 졸업반 10월 12일(음8월 26일) 아버지의 유고는 혼돈과 충격이었다.

대만 유학을 접고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정리하면서 사회 생활의 첫 발을 서툴게 내딛던 83년 이른 봄 128평의 대지에 정초하여 70평에 가까운 당시로는 저택을 지었다. 물론 거주의 목적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遺命에 따라 온 집안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명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일이고 현실에 전혀 맞지 않지만, 여하튼 아직도 당내간 50~60명이 모여도 좁지 않으니 그동안 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나이 겨우 20대 중반이니 혈기 왕성하던 때라 교직이나 직장 생활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허황된 꿈을 꾸던 나이였다. 그로부터 25년 지난해 태어난 쉰둥이 승학이를 핑계삼아 어머니 허락을 받아 난방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는 조무영 형에게 맡기고 공사 금액 불문이니 그와 나는 막역한 사이다.

 

 늦둥이 덕분에 거실에 처음으로 보일러 호스를 깔고 3개의 주방과 3개의 욕실에 온수를 나오게 하고 주방의 씽크대도 바꾸려한다. 장손인 내게 시집와서 그동안 온수가 없는 주방에서 고생한 아내에게 결혼 20년의 늦은 선물이기도 하다. 늘 번듯한 아파트를 그리다가 청흥 문중의 마지막 장손부는 현대의 재실을 고쳐 찬란한 변화의 행복을 그려본다.

 

 정년 후라도 100년 전 선대에 내렸던 敬義齋(경의재)의 현액을 다시 걸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시절에 맞지 않은 학문을 하여 꿈도 접고 책도 접었으니 '연소재'는 몰락한 남인 가문의 마지막 택호일 뿐, 이제 우리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무자년(2008년) 칠월 연소재 중수에 즈음하여.....      

 

 

              1983년 당시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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