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지산유고

양제안(梁濟安)

도솔산인 2007. 5. 14. 21:21
 

 

* 양제안[梁濟安(1860.04.09~1929.05.25)

 

 호는 벽도,  경상북도 영일군 죽장 두마 출신이다.

1896년 이기찬(李起璨) 의병에 중군(中軍)으로 임명되었다. 금릉(金陵)에서 부서를 정하였는데 왕산 허 위는 참모장을 맡았으며 병력은 수백 명이었다.

 진을 금산·성주 두 곳에 설치한 이기찬 의병군은 대구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으나 기밀이 누설되어 금산은 경군(京軍)과 공주 관군의 역습으로, 그리고 성주는 대구 관군의 역습을 받고 패퇴하였다. 양제안은 이때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진천으로 이동하였다. 다른 일부 병력은 영동·황간·문경 등지로 이동하였으나 큰 전과 없이 국왕의 선유밀서를 받고 해산하였다.

 1905년 일제의 강요로 1,300만원의 국채를 지게 되자 전국에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는데 양제안은 대구에서 금연보채(禁煙報債) 운동을 벌였다.

 1910년 나라가 망하고 삼엄한 헌병경찰제도가 실시되자 양제안은 영주 풍기에서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1929년 사망할 때까지 교육에 전념하여 후진에게 배일사상과 항일투쟁정신을 고취시켰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註·제안실기 (벽도공실기)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244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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