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독립운동

구한말 의병장 발굴

도솔산인 2006. 8. 21. 03:07

구한말 의병장 79명 새로 발굴… 일본경찰 기록 추적 전투·활약상 생생하게 복원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의병장 79명의 기록이 한 재야 사학자에 의해 추적·집대성됐다. 경남 양산 물금고 교사 이태룡(51)씨는 20년간 의병장들에 대한 기록 검토와 출신 지역 답사를 통해 ‘한국 근대사와 의병투쟁’ 1·2권을 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방대한 의병총서=이씨는 구한말 우국지사인 황현의 역사서 ‘매천야록’을 기초로 추적을 시작했다. 의병장 이름만 간단히 언급돼 있는 매천야록과 달리 일본 경찰의 비밀기록인 ‘폭도에 관한 편책’에는 의병장의 활동 기간 및 장소가 일자별로 서술돼 있었다. 폭도에 관한 편책은 국사편찬위원회가 1968∼1990년 번역해 한국독립운동사 자료로 출간했다. 그러나 번역만 됐을 뿐 이를 총체적으로 묶은 연구는 없었다. 의병 관련 부분은 총 8143쪽의 방대한 양으로 관련 기록을 모두 손으로 기록해 한데 묶었다. 이씨는 이외에도 국사편찬위가 만든 독립운동사,주한일본공사관기록 등을 참조했다.

이씨가 발굴한 의병장 강두필은 함경남도와 인접한 강원도 회양군과 평강군에서 1910년 경술국치 직전까지 활동했다. 최소 50여명의 부대를 이끌고 그해 7월까지 8차례 이상 일본 군경과 교전한 것으로 추정됐다. 1910년 7월3일 당시 황해도 경찰부장이 통감부 경무총장에 보낸 보고서는 “6월22일 강석필(강두필의 이명)이 이끄는 75명의 의병이 강원도 이천군에 출몰하였고…정예무기로 무장한 의병 탓에 헌병 분견소에서 떠난 토벌대는 보조원 2명이 전사하고 2명의 부상자가 생겼다”고 서술했다.

의병장 정인국은 황해도 해주군수 출신으로 1910년 3월부터 일대 의병부대의 총대장으로 추대되어 일제가 만든 철로를 방해하는 등 매복 작전을 지휘했다. 그해 5월 일본 경찰 전보에는 “의병장 정인국은 평산군 용산면에서 의병장들을 모아 놓고 회의하다 급습을 당하자 …작은 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체포하려 하자 돌연 칼로 반격해 상등병의 목을 찌르고 돌덩이로 공격해 현장에서 총살했다”고 서술돼 있다.

이씨는 9월 시리즈 3·4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3권은 의병의 삶과 투쟁형태,병기와 탄약 등의 자료를 모았고 4권은 1988년부터 8년여 동안 전국 100여곳의 의병 격전지와 후손들에 대한 그의 답사록이 실려 있다.

◇학계 및 국가보훈처 시각=학계는 이씨의 연구에 대해 소규모 부대를 이끌었다고 해서 모두 의병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세대 사학과 김도형 교수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부터 1910년 합병 때까지는 기존 의병부대에서 떨어진 분대장 출신들이 후세대 의병장으로 활동했다”면서도 “학계가 주목하지 않은 기록들을 집대성한 것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관련 기록을 검토한 뒤 새로 드러난 인물에 대해서는 건국훈장 애국장 등 서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훈심사과 조규태 연구관은 “1909년 전후의 의병활동은 기간이 짧고 전적이 잘 드러나지 않아 심사에 애를 먹지만 순국 기록 등이 남아있으면 포장 추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은 “근대사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의병들의 삶이 이씨의 연구를 통해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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