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추억산행

동계설악 서북*공룡&가야동계곡 이야기I(080222~25)

도솔산인 2012. 8. 31. 05:34

 

동계설악 서북*공룡&가야동계곡 이야기I(080222~25)

 

 

▣ 일  시 : 2008년 2월 22일 - 25일(3박 5일)

▣ 산행지 : 설악산

▣ 인  원 : 4명(미산님, 공교수님, 소혼님, 余) 

▣ 코스&일정

 

   - 0일차 : 용대리 봉정식당

   - 1일차 : 남교리 - 12선녀탕 - 대승령 - 1408봉 - 귀때기청봉(14.4km)

 

 

 ♣ 0일차&1일차(080222-23)

 

  22일 금요일 오전 12시 부산을 출발한 <소혼>은 마산에서 <미산>님, 젤트를 손수 설계 제작한 <공교수>님과 합류하여 대전 농수산물센터 하나로마트에서 나를 싣고 설악으로 향했다. 부산 출발 8시간, 대전 출발 4시간 만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봉정식당에서 짐을 풀고 장비 점검에 들어가 젤트, 후라이, 압력밥솥, 대형 코펠, 휘발류버너, 추가연료 2리터, 개스버너, 개스 3통의 공동 장비와 7식의 식량과 비상시 1식의 식량을 계근하여 각각의 배낭에 패킹한 후 중량을 확인했다. 天命又五의 <미산>님은 21.5kg, <공교수>님은 18.6kg, 不惑有三의 <소혼>은 21.8kg, 望六의 <도솔>은 22.5kg로 각자 운행할 수 있는 중량으로 장비와 식량을 분배한 후, 나머지 개인 장비와 식량을 차에 데포시킨 후 이번 산행의 운행에 관한 다음과 같은 협의에 들어갔다.

 

  <협의 내용>

  1. 사고 발생 시 그 시점에서 산행을 중지하고 탈출한다.

  2. 선두는 내가, 후미는 소혼이 맡고 속도는 선두가 조절한다.

  3. 식수는 12선녀탕 막탕과 희운각에서 각각 3리터씩 취수한다.

  4. 산행은 50분 운행을 한 후 10분 휴식을 원칙으로 한다. 

 

 대강의 원칙을 정한 후 지난 겨울 지리 동부와 남부 능선, 삼각고지, 하봉능선에서 여러번 함께 산행을 하면서 서로의 운행 중량과 장비의 운용을 확인한 터라 술잔에 술을 가득 담아 서로의 각오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남교리에 도착하니 06시 10분 마침 분설이 내려 날씨는 을씨년스럽다. 1시간 운행을 한 후 배낭을 내려 놓고 계곡에 내려가 얼음을 깨고 취수를 하고, 12발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소혼과 나는 500ml, 두 분은 1L의 중량이 더해진다. 수해로 인해 황폐해진 복숭아탕을 지나며 차마 사진기에 담을 수 없었다. 

 

 앞에 먼저 간 두사람의 발자욱이 선명했다. 취수를 못하면 낭패한 산행이 될 터라 막탕에 이르러 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4리터의 수낭을 배낭에 수납하니 발걸음이 한층 무거워졌다. 새벽 4시에 남교리에서 출발했다는 홀로 산객과 인사를 나누고 오름짓을 하는데 영하 10도의 기온에 능선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세차다. 안산 삼거리를 지나 대승령까지는 완만한 내리막 길이다. 대승령에서 만두와 떡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지난해 8월 역 코스를 하고 흑선동으로 내려온 일이 있는데 운행에 무리를 하여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빠른 운행이 최선의 산행은 아니라는 생각한다. 산행 내내 대화 한마디 없이 앞을 향해 질주하여 일행의 페이스를 잃게 하고, 선두를 줄곧 유지해 체력을 자랑삼는 것처럼 무모한 산행은 없을 것이다. 오늘 잠잘 곳 또한 산이거늘 자기의 어긋난 즐거움을 위해 어찌 일행에게 괴로움응 준다는 말인가? 나와 후미 <소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남교리에서 1408봉까지 거친 숨 한 번 몰아 쉰 일 없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름 길에서는 레스트 스텝으로 숨을 고르고 내림 길에는 힐 스텝으로 체력을 안배하니 걸음이 한결 수월했다.

 

 서북능선을 걸으며 차츰 다가오는 거대한 귀때기청봉의 위용을 보라! 눈보라와 거친 바람에도 온몸은 뜨겁게 전율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석양에 안산이 선명하고 가리봉의 뾰족한 첨탑봉 장관이어라! 내 여기에 오늘 잠시 머무는 것은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줄기 뜨거운 삶의 희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때기청에 올라 <소혼>이 준 南冥의 욕천을 읊었다.

 

 

           浴川

 

                                              曺植(조식)

 

全身四十年前累 : 온 몸에 쌓인 오십년 허물

千斛淸淵洗盡休 : 천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 버리네

 

塵土倘能生五內 : 만약에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지금 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리.

 

*倘 : 혹시,갑자기 당, *刳 : 가를, 도려낼 고

 

 장비를 맡은 <공교수>님의 지휘 아래 불과 5분 만에 귀때기청봉 정상에 미산루가 지어졌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 18도 뒤 늦게 남교리에서 11시간 올라온 홀로 산객 정모와 막탕에서 만난 최모와 재첩국과 식사를 하고 나니, 뒤에 도착해서 이웃에 자리를 잡은 세 분이 미산루를 방문하여 분위기를 북돋았다. 밖에 잠시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과 칼바람이 나를 반기더라...

 

 

 

 

 

 

 

 

 

 

 

 

 

가리산 주걱봉

 

 

 

 

 

1408봉에서 바라본 귀때기청봉

 

 

 

 

 

 

 

 

 

 

 

음력1월 17일

 

 서북능선은 지난 해에 비해 안전시설과 계단 설치로 생각보다 수월했다. 식수를 취수하여 8km를 넘게 이동한다는 것은 각오한 일이었지만 대기의 오염으로 눈을 녹여 식수로 쓰기에는 마땅하지 않다. 바람에 불어 홑 겹의 젤트 미산루가 흔들리고 등불이 요동치는 밤이 지나는 동안 피곤에 지친 나는 꿀 같은 잠을 이루었다. 날이 샐 무렵에야 바람이 점차 잦아들었지만 설악에 들어 귀때기청봉의 밤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