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목의 명소 향적사지와 제석당터
장터목의 명소 향적사지와 제석당터
▣ 일 시 : 2025년 02월 22일(토)~23일(일)
▣ 코 스 : 백무동-장터목-향적사지-천왕봉-제석당-백무동
▣ 인 원 : 3명
▣ 날 씨 : 첫날 맑음, 다음날 흐림(영하 18도)
오랜만에 장터목 인근에 있는 향적사지와 제석당터를 찾았다. 첫날 향적사지를 다녀온 후 장터목 마당바위에서 일몰을 보았다. 마당바위는 제석봉 쪽으로 약 100m 지점 바로 등로 옆에 있다. 다음날 일출 없는 천왕봉을 다녀온 후, 제석당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백무동으로 내려왔다. 옛 제석당터(?)에서 온도계를 보니 영하 10도... 장터목 대피소에 확인을 하니, 새벽 온도가 영하 18도라고 한다. 산행을 마치고 향적사지와 제석당터 관련 자료를 다시 읽어 보았다.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에는 "옛 제석당터에서 천왕봉과 제석봉이 보인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옛 제석당터는 어디일까.
■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에 나오는 제석당터
○ 9월 6일 간신히 폐허가 된 제석당(帝釋堂)터(옛 제석당터)에 이르렀다. 천왕봉을 바라보니 보다 더 높은 것이 없어,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는 하늘과 같았다. 다음으로 제석봉을 바라보니 그 형세가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러나 상봉에 비하면 발돋음을 하여도 미치지 못할 듯하였다. <중략> 다시 10여리를 갔는데... 저물녁에 제석신당(帝釋新堂)에 올랐다. 이 또한 신을 모시는 사당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층층이 늘어선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가 모두 앉은 자리에서 한눈에 들어왔다.
■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옛 제석당 터
○ 9월 4일 겨우 겨우 옛 제석당(帝釋堂)터에 도착하였다. 올라서 좌우의 바위와 골짜기를 조망하고, 산과 내의 형세를 가리키며 둘러보았다. 온 산에 보이는 것이라곤 푸른 회나무가 아니면 붉게 물든 나무였으며, 붉게 물든 나무가 아니면 저절로 말라죽은 나무였다. 푸르고 붉고 희고 검은 색깔이 뒤섞여 서로 비추어서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았다.
始達古帝釋堂舊基 登眺左右巖壑 指點山川形勢 滿山所見 非蒼檜則紅樹也 非紅樹則自枯木也 靑紫白黑 參錯相暎 如錦繡然
서쪽으로 1백여 리쯤 되는 곳을 바라보니 새로 지은 두 절이 있는데, ‘무주암(無住庵)’ 서쪽에 있는 절을 ‘영원암(靈源庵)’이라 하고, 직령(直嶺) 서쪽에 있는 절을 ‘도솔암(兜率庵)’이라 하였다. 도솔암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집으로 인오(印悟)가 지어 살고 있는 곳이다. 인오는 우리 유가의 글을 세속의 문장으로 여겨, 단지 불경(佛經)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여러 승려를 위하여 암자 앞에 붉은 깃발을 세워두었고, 발자취가 동구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西望百里餘 有新刱蘭若二 在無住之西曰靈源 在直嶺之西曰兜率 率乃僧舍印悟所築而自居者也 悟以吾儒書爲世俗文 只以識佛經 爲諸僧立赤幟 足跡不出洞門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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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제석당
○ 9월 4일, 제석당 앞에 이르자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온 골짜기에 안개가 짙게 깔리고 바람소리가 윙윙거렸다.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막막하고 어렴풋한 세계에 허다한 생물들이 은연중 그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할뿐, 인간의 지혜로서는 세세한 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이곳에 올라보니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동쪽∙서쪽 방을 나누어 차지하고서 곤히 한숨 자고 난 뒤 저녁밥을 먹었다.
至堂前 日已昏黑矣 萬壑烟冥 萬竅風號 使望之者只認其大包冲漠之間 有許多生植之類 隱然含蓄之量 而人莫之測也 到此境界 尤可奇也 與諸君分占東西房 困睡一塲後 乃喫了夕飯
제석당의 규모는 제법 넓어 들보의 길이가 거의 23~4자 정도나 되었다. 좌우의 곁방을 제외하고 가운데 삼 칸의 대청이 있었다. 지붕은 판자로 덮었는데 못을 박지 않았고, 벽 또한 흙을 바르지 않고 판자로 둘러놓았다. 다시 지은 연유를 물었더니, 한 노파가 돈을 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완성하였다고 한다. 미약한 노파의 힘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순식간에 큰일을 이루었으니, 미혹되긴 쉽고 이해하긴 어려운 사람 마음에 대해 참으로 탄식할 만하다.
堂之制頗宏濶 樑之長幾至二十三四尺矣 除左右夾房外 作廳三大間 上以板覆之而下釘 旁亦以板子圍之而無泥壁 問其改刱之由 則有一老媼爲化主 不一月而成之云 老媼幺麽之力 能使人感之 而作一鉅役於咄嗟之間 人心之易惑難解 良可歎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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